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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레비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송고시간2019-11-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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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KBS교향악단 6년 임기 마치는 상임지휘자 요엘 레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오후 12시35분. 직장인들이 기다리는 점심시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미미' 역을 맡은 소프라노 황수미는 강약을 조절하는 탁월한 목소리로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를 불렀다.

그러자 '마에스트로' 요엘 레비(69)는 오케스트라와 이견을 조율했다.

"템포가 너무 빨라요. 이 부분에선 조금 천천히 해야 해요…. 혼 소리가 소프라노 목소리에 비해 큽니다. 조금 줄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레비는 KBS교향악단원과 오페라 '라 보엠'에 출연 중인 황수미, 조르지오 베루지 등과 막바지 연습에 매진했다. KBS교향악단은 오는 24일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라 보엠'을 연주한다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100%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늘 이렇게 최선을 다한다"며 웃었다.

단원들로부터 "마에스트로"라고 불리는 요엘 레비. 그의 임기는 이제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에 올리는 '라 보엠'과 다음 달 27일 무대에 올리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끝내고 나면 그는 집이 있는 미국 애틀랜타로 돌아간다.

인터뷰 하는 요엘 레비
인터뷰 하는 요엘 레비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다음 달 퇴임하는 요엘 레비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레비는 지난 6년간 오케스트라를 맡으며 약 120회 정기연주회를 했다. 베토벤부터 쇤베르크까지 고전과 도전적인 현대음악을 적절하게 섞어 공연했다. KBS를 떠나는 소감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6년간 우리 오케스트라는 엄청난 발전을 이뤘어요. 내홍을 딛고, 멋진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관객들이 돌아왔죠.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 투어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6년은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저와 오케스트라가 이룬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레비가 취임할 당시인 2014년, KBS교향악단은 단원과 전임 지휘자 함신익 씨 사이의 진흙탕 싸움으로 과거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때 서울시향을 능가하는 오케스트라라는 찬사를 얻었으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악단은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졌다.

레비는 취임하자마자 기본기부터 다졌다. 그는 "나는 작곡자의 서번트(하인)"라는 마음으로 악보 중심의 연주 스타일을 오케스트라에 심었다. 때론 '재미없다' '템포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그는 작곡가의 의도에 맞는 연주야말로 진정한 음악이라고 굳게 믿으며 악단에 자신만의 색을 입혀갔다.

레퍼토리도 차곡차곡 쌓았다. 교향곡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말러와 브루크너. 여기에 난해한 20세기 현대 음악가 중에서도 낭만을 잃지 않았던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험 음악의 끝판왕' 쇤베르크까지 연주 영역을 넓혔다. 그는 지난 6년간 "한 번 연주한 레퍼토리를 우려먹으려고 하지 않았다"며 "늘 새로운 곡에 도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인생에는 '완벽'이라는 게 있을 수 없지만, 그는 예술세계에서 "완벽함을 추구한다"고 했다. '완벽'으로 이르는 도정은 오로지 연습뿐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100% 나아지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는 지난 6년을 보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18년 KBS교향악단은 말러 교향곡 제9번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연주회 실황은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 레이블인 도이체 그라모폰 음반 발매로도 이어졌다. KBS교향악단 창단 62년 만의 그라모폰 데뷔였다고 한다.

인터뷰하는 요엘 레비
인터뷰하는 요엘 레비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다음 달 퇴임하는 요엘 레비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그는 KBS교향악단과 6년을 함께하며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다만 오케스트라가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선 좋은 예술감독 아래 오랜 시간의 단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빈 메타가 이스라엘 필하모닉을 얼마나 지휘했는지 아시나요? 무려 50년입니다. 유진 오먼디도 40년 넘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죠. 카라얀은 병석에 눕기 전까지 베를린 필을 지휘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전통을 확립하고,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휘자와 교향악단의 오랜 교감이 필요합니다."

그는 미국 애틀랜타심포니, 벨기에 브뤼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일 드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 등을 이끈 명장이지만 처음부터 지휘자 길을 걸으려 했던 건 아니다.

그는 50여 년 전 바이올린, 퍼커션, 지휘를 동시에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1976년의 어느 날, 선배 주빈 메타가 그에게 기회를 줬다. 레비는 이스라엘 필하모닉을 이끌고 오페라 '오셀로'를 연주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레비는 "삶과 운명이 나를 지휘의 세계로 이끌었고, 나는 그런 변화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그동안 세계 여러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다양한 협연자를 만났지만 한국 연주자들은 "가능성이 엄청나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오늘 함께 호흡을 맞춘 황수미만 해도 엄청난 재능을 지닌 소프라노입니다. 몇몇은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이죠. 한국에 와서 연주자들 실력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재능있는 사람들의 연주를 듣는 건 정말 환상적인 일입니다."

레비는 "잠깐만요" "네~" 등 익숙했던 한국말을 뒤로한 채 곧 집으로 돌아간다. 앞으로 언제 이 말을 다시 사용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만은 마음속에 분명히 새기고 집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재능있는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6년간의 여정은 저로서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건 단순한 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니었어요.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요엘 레비
요엘 레비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다음 달 퇴임하는 요엘 레비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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