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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서 '反극우 포퓰리즘' 풀뿌리 시민 저항운동 확산

송고시간2019-11-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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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서 중·남부로 이동할 조짐…로마서도 내달 14일 집회 예고

기성 정치권, 내년 1월 지방선거 영향·정치세력화 등 예의주시

23일(현지시간) 밤 레조에밀리아 프람폴리니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ANSA 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밤 레조에밀리아 프람폴리니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ANSA 연합뉴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달 중순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州)의 주도 볼로냐에서 시작된 '반(反)극우 포퓰리즘' 풀뿌리 시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에밀리아로마냐주 레조에밀리아의 프람폴리니광장에선 23일(현지시간) 밤 6천∼8천여명의 시민이 모여 극우주의와 증오 정치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우산을 받쳐 들고 삼삼오오 광장으로 모여든 이들은 극우 정당 동맹과 이 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의 정치적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현실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같은 날 밤 움브리아주 페루자에서도 1천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여 극우 포퓰리즘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연대를 호소했다.

이 집회는 지난달 말 움브리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한 동맹이 지지자들과 함께 자축 행사를 열던 시점에 이뤄졌다고 현지 ANSA 통신은 전했다. 행사에는 살비니도 참석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에밀리아로마냐주를 중심으로 이뤄진 이러한 시민운동이 중·남부지역으로 확산할 징후도 감지된다.

남부 시칠리아주의 주도 팔레르모에선 이미 22일 밤 많은 시민의 참여 속에 관련 집회가 진행됐고,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도 일부 시민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내달 14일 집회를 한다고 공지한 상태다.

피렌체와 밀라노 역시 SNS상에서 집회 개최·참여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밤 페루자 집회에 등장한 '정어리' 팻말. [ANSA 통신]

23일(현지시간) 밤 페루자 집회에 등장한 '정어리' 팻말. [ANSA 통신]

이번 반극우 시민운동은 친구 간인 볼로냐 출신 30대 4명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발적 풀뿌리 집회를 제안한 게 시발점이 됐다.

오랜 경기 침체에 대한 불만과 이주·이민자들에 대한 증오 심리를 활용해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든 극우주의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취지다.

이달 14일 볼로냐에서 열린 첫 집회에선 악천후 속에 예상을 깨고 1만2천∼1만5천여명이 운집하면서 기성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이어 18일에도 인근 모데나에서 7천여명의 시민이 모여들어 이번 운동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예고했다.

이들은 자신을 '정어리'(sardine)라고 칭한다. 정어리는 수백만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며 장관을 연출하는 어류다.

개개인의 힘은 작고 미약하지만 여러 시민이 하나로 뭉치면 거대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의지와 바람이 담겼다. 집회에선 정어리를 그려 넣은 팻말을 쉽게 볼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시민운동이 정치 개혁 운동으로 번지거나 이를 기점으로 또 하나의 정치결사체가 태동하지 않을까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현재 이탈리아 연립 정부의 한 축을 구성하는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도 2007년 볼로냐에서 일부 시민이 기성 정치권의 각성과 변화를 촉구하며 벌인 평화로운 거리 집회가 당 창설의 시초가 됐다.

페루자 집회에 운집한 시민들. [ANSA 통신]

페루자 집회에 운집한 시민들. [ANSA 통신]

내년 1월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시민운동이 확산하는 점도 정치권의 관심을 끄는 요소다.

이 선거는 오성운동과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이 손잡고 구성한 연립정부의 미래와 이탈리아 정치의 향배를 결정할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이탈리아 20개주 가운데 인구가 6번째로 많은 에밀리아로마냐는 최근 수십 년간 줄곧 진보 세력이 우세를 보인 '좌파의 성지'로 불린다.

하지만 동맹을 중심으로 한 우파연합이 최근 지지도를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며 민주당의 아성에 도전하는 상황이다.

반면에 여권은 오성운동과 민주당이 각각 후보를 내세우기로 하는 등 분열 양상을 보이며 곤경에 처했다.

대부분의 정치 분석가들은 이곳에서 여권이 패배할 경우 연정 내 갈등·대립이 첨예화하며 연정 붕괴 수순으로 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이는 동맹이 그토록 원하는 조기 총선과 극우 단독 정권 탄생 등의 대변혁을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다분히 자신을 겨냥한 저항 운동이 확산하는 데 대해 적지 않게 당황해하는 것으로 알려진 살비니는 배후에 민주당이 있다며 집회의 순수성을 깎아내리는 등 반격에 나서는 모습이다.

그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정어리'를 긁어 없애면 그 뒤에 민주당 인사들이 보일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물론, 집회를 조직하는 측은 어떠한 정치세력과도 연결돼 있지 않은 자발적 민심의 표출이라며 살비니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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