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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남극조약 60년과 지구의 미래

송고시간2019-11-2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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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남극대륙 지도, 장보고과학기지(왼쪽)와 세종과학기지를 합성한 사진(PG). [연합뉴스 자료]

태극기와 남극대륙 지도, 장보고과학기지(왼쪽)와 세종과학기지를 합성한 사진(PG). [연합뉴스 자료]

(서울=연합뉴스) "남극 지역이 오로지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만 항구적으로 이용되고 국제적 불화의 무대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모든 인류의 이익이 됨을 인식하고, 남극 지역에서의 과학적 조사에 관한 국제협력이 과학적 지식에 실질적인 공헌을 가져올 것을 인정하며, 국제지구관측년 동안 적용됐던 남극 지역에서의 과학적 조사의 자유의 기초 위에서…"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9년 12월 1일 아르헨티나·호주·벨기에·칠레·프랑스·일본·뉴질랜드·노르웨이·남아프리카연방·소련·영국·미국 12개국은 위와 같이 시작하는 남극조약(Antarctic Treaty)에 서명했다. 골자는 평화적 이용(1조), 과학조사의 자유 보장(2조), 영유권 주장 유보(4조) 등이다. 아울러 지리적 정의(6조)에 따라 남위 60도 남쪽의 땅과 하늘과 바다가 조약 대상으로 정해졌다.

남극 세종과학기지 인근의 나레브스키 포인트(일명펭권마을)에 서식하는 젠투펭귄 무리. [환경부 제공]

남극 세종과학기지 인근의 나레브스키 포인트(일명펭권마을)에 서식하는 젠투펭귄 무리. [환경부 제공]

'제7의 대륙'인 남극 대륙 넓이가 지구 육지 면적의 9.1%인 1천350만㎢에 이른다. 유럽이나 오세아니아 대륙보다 넓고 남미 대륙의 76%에 해당한다. 한반도의 61배, 남한 땅의 135배다. 지구상에서 가장 춥고 두꺼운 얼음에 덮여 있어 금단의 땅으로 남아 있다가 20세기 들어서야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기 시작했다. 남극점을 최초로 밟은 인물은 1911년 노르웨이의 아문센이었다.

이때를 전후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국·프랑스·노르웨이 등은 먼저 이곳을 발견하거나 선점했음을 내세웠고 호주·뉴질랜드·칠레·아르헨티나 등은 지리적 인접성을 근거로 삼았다. 칠레가 병원, 은행, 우체국 등을 개설하는가 하면 아르헨티나는 자국민이 남극에서 결혼하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선수를 빼앗긴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은 영유권을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나라의 영유권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미국 맥머도 남극기지의 미국과학재단 건물 앞에 남극조약 최초 서명국 12개국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맥머도 남극기지의 미국과학재단 건물 앞에 남극조약 최초 서명국 12개국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남극을 둘러싼 각축전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분쟁 해결에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과학자들이었다. 국제학술연합회가 1957∼1958년을 국제지구물리관측년으로 선포하자 12개국 5천여 명의 과학자가 1957년 7월부터 1958년 12월까지 남극 공동연구를 1년 반 동안 수행했다.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이 국제공동연구 프로그램을 계기로 그때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남극의 비밀이 속속 밝혀졌다. 남극을 덮고 있는 만년빙의 평균 두께는 2천160m이며, 부피는 약 3천만㎦에 달했다. 이는 지구상 얼음 총량의 90%, 담수량의 68%를 차지한다. 인류가 100여 년간 이용할 수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해 철·구리·니켈 등 광물자원, 크릴과 같은 생물자원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1995년 서울에서 열린 제19차 남극조약 합의당사국회의 개회식에서 공로명 외무장관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5년 서울에서 열린 제19차 남극조약 합의당사국회의 개회식에서 공로명 외무장관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특정 국가가 이를 독차지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 속에 1958년 5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남극 중립화를 위한 협상을 제안했다. 1959년 6월 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12개국 대표가 첫 회담을 연 뒤 6개월 만에 합의에 이르렀고 1961년 6월 23일 남극조약이 발효됐다. 12개국으로 출발한 협의당사국은 29개국으로 늘어나 현재 가입국은 비협의당사국 24개국을 포함해 53개국이다.

이어 물개 보존협약(1972), 남극 해양생물자원 보존협약(1980), 남극 광물자원 활동의 규율에 관한 협약(1988년)이 차례로 체결됐다. 환경보호에 관한 남극조약 의정서(일명 마드리드 의정서)가 1991년 체결됨에 따라 1998년 발효 후 50년간 자원 개발을 금지하기로 했다. 극지 탐험의 상징이던 썰매개도 남극 토종생물에 바이러스를 옮길 우려가 높아 추방했다. 연구 활동은 해를 거듭할수록 활발해졌다. 아르헨티나가 1953년 주바니기지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29개국이 남극에 상주 연구기지를 두고 있다.

1988년 2월 17일 열린 세종과학기지 준공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8년 2월 17일 열린 세종과학기지 준공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나라는 1978∼1979년 크릴 시범 조업에 나서면서 남극권에 첫발을 디뎠다. 유엔 회원국이 아니면 협의당사국 만장일치의 동의가 있어야 남극조약에 가입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여러 차례 가입을 시도했다가 쓴잔을 마셨다. 탐험이나 연구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요건도 채워야 했다.

한국해양소년단의 남극관측탐험대가 1985년 11∼12월 킹조지섬과 인근 해역을 탐사했고, 허욱·허정식 대원이 그해 11월 29일 남극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4897m)를 세계에서 6번째로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1985년 11월 19일 남극 해양생물자원 보존협약에 가입한 데 이어 마침내 1986년 11월 28일 33번째로 남극조약 가입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2010년 1월 남극 해상에서 얼음을 깨며 운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2010년 1월 남극 해상에서 얼음을 깨며 운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은 1988년 2월 17일 킹조지섬 바튼반도의 남위 62도 13분, 서경 58도 47분 지점에 세종과학기지를 준공해 본격적인 남극 연구를 시작했다. 세계에서 16번째였다. 1989년 10월 9일에는 23번째로 남극조약 협의당사국 자격을 부여받았다. 허영호는 1994년 1월 10일 한국인 최초로 남극점을 밟았고, 한국은 2004년 남극활동·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순수 국내기술로 만든 최첨단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2009년 남극해와 북극해 운항에 나선 데 이어 2014년에는 남극 대륙 테라노바만 남위 74도 37분, 동경 164도 12분 지점에 장보고과학기지를 세워 한국은 두 개 이상의 상설 기지를 보유한 10번째 국가가 됐다. 장보고기지에선 세종기지에서 하기 어려웠던 고층대기학, 빙하학 등 순수과학과 천연물질을 기반으로 한 의약품 연구 등 다양한 응용 분야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2014년 2월 12일 문을 연 장보고과학기지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4년 2월 12일 문을 연 장보고과학기지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은 2009년 제32차 남극조약 협의당사국회의 결정에 따라 71번째 남극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세종기지 인근 나레브스키 포인트(일명 펭귄마을)를 관리하고 있다. 장보고기지 인근 인익스프레시블섬 주변 지역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제안이 내년 5월 43차 남극회의에서 받아들여지면 한국이 관할하는 두 번째 펭귄마을이 생겨난다.

남극은 오랫동안 인간이 살 수 없는 동토의 대륙이었으나 그 덕분에 지구상의 마지막 청정지역으로 남았다. 그러나 지구온난화 등으로 남극의 미래도 위협받고 있다. 남극의 미래는 지구의 미래이기도 하다. 60년 전 남극조약의 정신이 오래도록 지켜지기를 기원하며 한국의 선도적 역할을 기대한다. (한민족센터 고문)

이희용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고문

이희용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고문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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