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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구하라 몰카·동영상 가해자 처벌 충분했나?

송고시간2019-11-2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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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 前남친 집유판결 재부각…쟁점인 '촬영동의 여부' 판단 적절성 논란

檢·警, 동영상 배포 협박에 특별법 대신 형법 적용…당시 법에 '구멍'

구하라 사건 계기 몰카 '솜방망이 처벌'도 도마 위에

영정 속 구하라
영정 속 구하라

(서울=연합뉴스) 가수 구하라의 빈소가 25일 오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곳은 팬들을 위한 빈소로 가족과 지인을 위한 빈소는 다른 병원에 마련됐다. 2019.11.25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가수 고(故) 구하라 씨의 죽음은 그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과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처에 대해 성찰의 숙제를 남겼다.

그 맥락에서 구씨 전 남자 친구 최종범 씨가 했던 '몰카 촬영'과 동영상 유포 협박에 대한 처벌이 충분했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함으로써 최씨가 실형을 면한데 대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몰카 범죄를 어떻게 근절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거나 "법원이 피해자를 배려하기는 커녕 가해자 입장에서만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구씨 사건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는 지난 8월29일 최씨의 공소사실 중 협박·강요·상해·재물손괴 등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구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에 대해서는 전후 사정 등을 고려해 "촬영이 구씨의 의사에 반한 것은 아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지난해 8월 함께 여행을 갔다가 숙소에서 구씨의 뒷모습 사진을 몰래 6차례 촬영한 혐의(카메라 이용 촬영)가 공소사실에 적시됐지만 법원은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특별법) 제14조 1항은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이 조항에 따라 최씨가 구씨의 의사에 반해 촬영을 했는지를 쟁점으로 삼아 심리했고, 그 결과 "피해자 의사에 반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촬영 소리를 듣고도 구씨가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구씨가 최씨의 휴대폰에서 사진을 발견하고도 지우지 않은 점 등이 판단 근거가 됐다.

이를 두고 '성 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판결이 아니냐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최씨가 촬영한 사진을 '구씨의 의사에 반하지 않은 촬영물'로 평가할 수 있을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선고 당일 판시내용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구씨가 최씨의 촬영을 명시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고 인정했다.

즉 촬영에 동의한다는 명시적인 의사 표현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점 등 여러 정황을 이유로 구씨의 의사에 반해 촬영된 사진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촬영에 동의한 경우에만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피해회복이 어려운 몰카 범죄에 대해선 피해자의 동의여부가 명확하지 않으면 '의사에 반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수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한 조순열 전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2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피해자에 막중한 피해를 입히는 몰카 사건에서 촬영물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지 여부는 매우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구씨가 촬영에 직접적으로 동의를 표하지도 않았는데 단순히 간접적인 정황들을 이유로 들어 '의사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찰과 검찰이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최씨를 성폭력처벌특별법상의 '카메라이용 촬영물 유포 미수'로 기소하지 않은 점도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부분은 판례의 '벽'과 실정법상의 '구멍'이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9월 구씨가 촬영한 두 사람의 성관계 동영상을 한 연예매체에 제보하겠다고 협박한 최씨의 혐의에 대해 검·경은 일반 형법상 협박으로만 기소했다.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되는 범죄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성폭력처벌특별법상의 카메라이용 촬영물 유포죄보다 형량이 가볍다.

최씨는 단순히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한 연예매체에 연락해 동영상을 제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충분히 특별법상의 카메라이용 촬영물 유포 미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도 검찰이 형법상 협박 혐의로만 기소한 것은 '카메라이용 촬영물 유포죄의 촬영물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된 것이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기존 판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대법원은 2009년 10월 판결에서 "카메라이용 촬영물 유포죄에서 '촬영물'이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한 영상물을 의미하고, 타인의 승낙을 받아 촬영한 영상물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최씨가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동영상이 구씨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이 판례에 따라 죄가 되지 않는다고 수사단계에서 판단한 것이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동영상 유포라도 촬영 단계에서 동의했다면 성범죄특별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가 결국 최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셈이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은 촬영물이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유포한 경우 범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행위 당시의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형법원칙에 따라 법 개정 전에 발생한 최씨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었다.

결국 최씨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법률에 '구멍'이 존재했던 셈이다.

불법 음란물 유포
불법 음란물 유포

[연합뉴스TV 제공]

법원의 몰카 범죄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도 힘을 받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은 25일 오전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지난 15일 게시된 해당 청원은 구씨 사망 뒤 동의자가 급증해 27일 현재 23만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몰카 범죄는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인데 법원의 실형 선고는 10건에 1건도 채 안 된다. 실형 선고율이 2014년 2.8%에서 지난해 8.0%로 올라갔지만 여전히 집행유예 비율과 벌금형 비율이 각각 41%와 48%로 실형에 비해 훨씬 높다.

검찰 관계자는 "몰카 범죄는 피해를 회복하기 어려워 피해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야기한다"며 "특히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기 위해 영상물 등을 유포하는 경우는 죄질이 매우 불량하므로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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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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