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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급박했던 사건현장…새내기 순경, 26년 뒤 '헌혈왕' 됐다

송고시간2019-12-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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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동부서 금동직 경위, 한 달 한 번꼴 326차례 혈액 뽑아 생명 나눠

홀몸노인 돌보고 무료급식 앞장…"이웃 향한 온기 구석구석 퍼졌으면"

'헌혈 326회'
'헌혈 326회'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대구 동부경찰서 동대구지구대 소속 금동직 경위가 '헌혈 유공장 최고명예대장' 포장증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2019.12.8 mtkht@yna.co.kr

(대구=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내 몸 속 피 한 방울로 위급한 생명을 살릴 수 있으니 보람이 큽니다."

대구 동부경찰서 동대구지구대에 근무하는 금동직(50) 경위는 26년 동안 생명 나눔을 실천해온 자타 공인 '헌혈왕'이다. 햇병아리 순경 시절 경험한 아찔한 사건 이후 피를 나누기 시작해 무려 326차례 헌혈을 이어오고 있다.

1회 헌혈량이 400㎖인 점을 감안할 때 지금까지 뽑아준 혈액은 13만㎖, 1.5ℓ 병으로 87개에 이른다.

찬바람이 불던 지난달 말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에서 만난 금 경위는 "생활 속 작은 봉사를 실천하고 있을 뿐,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나 취재진 질문이 이어지자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생명을 나누는 일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좋겠다. 정기적인 헌혈은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된다"는 등 헌혈 예찬론을 폈다.

금 경위는 이날도 왼쪽 팔뚝의 푸른색 제복을 걷어올리고 뜨거운 피를 뽑았다. 헌혈 자체를 즐기듯이 "69세까지 500회 헌혈을 채우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 등산과 마라톤으로 체력을 다진다"고 밝게 웃었다.

그를 헌혈왕으로 만든 계기는 1993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울릉결찰서 저동파출소 초임 발령된 그는 정박 중인 어선에서 선원간 패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부를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린 채 신음하는 선원을 발견했다. 사람이 피를 쏟는 강력사건 현장을 처음 마주한 순간이다.

당장 흉기라도 제거하고 싶었지만, 함부로 손을 댔다가 환자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판단에 그는 현장을 통제한 채 119구급대를 기다렸다.

곧이어 도착한 119구급대는 환자를 울릉군 보건의료원으로 이송했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없이 그의 귓전에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A형 혈액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급해요"

그 당시 울릉도는 대구 소재 혈액원으로부터 배편으로 혈액을 배달받아 환자 치료에 썼다. 이 때문에 다량의 수혈 환자가 생기거나 특정 혈액형 재고가 바닥날 경우 비상이 걸리기 일쑤였다.

위급 상황은 울릉경찰서로 전파됐고, 이내 전경 2명이 응급실로 달려와 팔뚝 혈관에서 피를 뽑았다. 혈액형이 환자와 같은 A형이던 그도 즉석에서 헌혈에 동참했다.

이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환자는 가까스로 생명을 건져 육지 종합병원으로 이송됐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뒤 파출소로 복귀한 새내기 경찰관은 사건 처리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혈액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를 앞에 두고도 수혈용 피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던 상황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후 그는 2∼3개월에 한 번씩 포항에 출장 갈 때마다 짬을 내 헌혈 버스에 올랐다. 한 방울의 피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빛이 된다는 믿음에서다.

20년 넘게 헌혈 봉사
20년 넘게 헌혈 봉사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대구 동부경찰서 동대구지구대 소속 금동직 경위가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에서 헌혈을 하는 모습.2019.12.8 mtkht@yna.co.kr

2년의 섬 근무를 마치고 육지로 나온 그는 헌혈 횟수가 더욱 늘려 나갔다.

이 과정을 거쳐 2005년과 이듬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 유공 '은장'과 '금장'을 연속해 받았다. 누적 헌혈 30회와 50회에 맞춰 주는 일종의 인증서다.

2008년에는 100회를 채워 명예의 전당 격인 헌혈 레드카펫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3월 마침내 300회를 달성해 최고명예대장 포장을 받았다.

몇해 전에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동료 가족을 위해 슬그머니 헌혈증 20장을 건네기도 했다.

헌혈 레드카펫에 이름을 올린 사람 중 300회 이상 헌혈자는 전국을 통틀어 276명에 불과하다. 대구·경북에는 23명이 있다.

대구·경북혈액원 관계자는 "20년 넘게 꾸준히 헌혈에 동참해 준 이타정신이 수혈 환자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 경위는 헌혈뿐만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도 남다른 관심을 쏟는다.

포항 근무시절 혈혈단신으로 외롭게 사는 한 할머니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되면서 틈날 때마다 주전부리 등을 사 들고 찾아가 아들 노릇을 대신했다.

2010년 웃음치료사 1급 자격을 취득한 뒤 주변 경로당 등 복지시설을 돌면서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역할도 한다.

대한적십자사의 달성공원 무료 급식에 6년째 참여하고 있으며, 자신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는 재난 현장 봉사활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선행이 알려지면서 2012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근무지에서 만난 동료 경찰관은 "업무에 지친 몸을 이끌고 쉼 없이 봉사하는 금 경위를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며 "모범 경찰인 동시에 본받을 게 정말 많은 분"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칭찬에 머쓱해진 금 경위는 "이웃과 정을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며 "추운 겨울일수록 불우이웃을 위한 온기가 사회 구석구석에 퍼졌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헌혈 나눔 함께 합시다"
"헌혈 나눔 함께 합시다"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대구 동부경찰서 동대구지구대 소속 금동직 경위가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2019.12.8 mtkht@yna.co.kr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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