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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이승훈, 배신자 정약용에게 신앙을 묻다

송고시간2019-12-0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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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순교자 이승훈, 배신자 정약용에게 신앙을 묻다 - 1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에 서학, 즉 천주교를 수용한 가문 일원이었다.

셋째 형인 약종은 신유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고, 둘째 형 약전도 서학에 깊이 빠졌다. 맏형 약현은 조선교회 참상을 알리는 백서를 쓴 황사영을 사위로 뒀다. 정약용 누이는 한국인 최초 영세자 이승훈(1756∼1801)과 혼인했다.

이승훈은 20대 중반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는 대신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정약현 처남인 이벽과 교류하면서 천주교를 접했고, 1783년 중국에서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여러 차례 배교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신유박해 때 목숨을 잃었다.

신간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는 이승훈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가 한때 신앙의 동지로 생각한 처남 정약용과 겪은 일과 감정을 '팩션' 형식으로 쓴 책이다.

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30년 가까이 방송사 기자로 일한 저자 윤춘호 씨는 역사 기록과 상상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두 사람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믿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논한다.

이승훈과 정약용 운명이 결정적으로 갈린 사건은 신유박해. 저자는 이승훈이 천주학을 배척하기도 했으나, 재판 과정에서 정약종과 정약용 형제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특히 다산이 보여준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황사영은 제 조카사위이지만 원수입니다. 그자는 죽어도 변치 않을 것입니다. 이백다록은 이승훈입니다. 그는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라는 정약용 심문 기록을 인용한 뒤 "다산의 고발과 진술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사정없이 교우들과 동지들의 가슴 한복판을 찔렀다"고 주장한다.

이어 "버려야 할 사람과 챙겨야 할 사람을 정약용은 냉혹하게 구분했다"며 "그가 국문장에서 구하려고 애쓴 사람은 친형 정약전과 친구 오석충 두 사람뿐이었고, 매형 이승훈은 버려야 될 사람이었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다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는 정약용이 사용한 호 중 하나인 여유당(與猶堂)을 지은 시점과 의미에 주목한다.

"여유당은 겨울에 개울을 건너는 것처럼 조심하고 이웃 사람들의 시선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정조의 죽음이 불러올 권력의 변화를 예감하고 처신에 각별히 조심하겠다는 각오를 표현한 것이었다."

신유박해에서 목숨을 건진 다산은 이승훈보다 35년을 더 살았다. 저자는 자찬묘지명을 근거로 다산이 말년에 "제 삶이 온통 후회투성이이지만 제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단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제가 매형을 원수로 부른 일"이라고 생각하며 용서를 구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러한 애틋함이 이승훈에 대한 관심을 야기했다고 저자는 고백했다. 이승훈은 순교했지만 순교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살아서 처절했으나 죽어서 더 처절해진 인물이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푸른역사. 280쪽. 1만5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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