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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육군 조병창] ③ "주변 유적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하자"

송고시간2019-12-1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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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창·함봉산 지하토굴·줄사택 등 아픈 역사의 현장 보존해야

"체계적 조사 시급…국내 강제동원 피해자 650만명 조사도 필요"

외관 그대로 간직한 일본육군 조병창 공장 3개 동
외관 그대로 간직한 일본육군 조병창 공장 3개 동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인천시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 내에 일본육군 조병창 공장 3개 동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육군 조병창은 일본군이 중국 침공을 위해 1939년 만들어 조선인 1만여명을 강제동원했던 무기 제조공장이다. 2019.12.9 tomatoyoon@yna.co.kr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일본육군의 무기 제조공장인 조병창과 주변 지역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병창이 있는 인천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 주변에는 조병창에서 만든 무기를 보관한 함봉산 지하토굴, 조병창 하청기업 노동자 숙소인 줄사택 등이 남아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의 대표적 시설인 일본육군 조병창 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해방 후 첫 공개…강제동원 피해상징 '일본육군 조병창'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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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6-lMFQx0bU

학계와 지역 문화계 전문가들은 11일 일본육군 조병창과 조병창 주변 지역의 관련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광무 부평문화원 상임연구위원은 "일제가 일본 본토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인천 한 곳에만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조병창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허 위원은 "일본 본토 내 6개 조병창은 흔적이 사라지고 없는 상황에서 인천 조병창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의미 깊은 유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부평미군기지 인근 인천시 부평구 함봉산 일대에는 조병창에서 생산한 무기를 보관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지하토굴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실제로 인천 부평문화원은 지난 2016년 인천시 부평구 산곡 1동과 3동 일대 함봉산에서 모두 24개의 지하토굴을 파악했다.

특히 일본육군 조병창 인근 부평동에는 일본군이 관리하던 군수물자 공장인 미쓰비시제강 인천제작소의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미쓰비시 줄사택'도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부평구 전역이 일제가 도발한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이라고 할 정도로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전쟁 때 폭격 맞은 조병창 건물
한국전쟁 때 폭격 맞은 조병창 건물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인천 부평미군기자 '캠프마켓' 내에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2개동으로 갈라진 건물(아래쪽)이 서 있다. 위쪽 사진은 1948년 당시 이 건물의 모습. 이 건물은 조병창 본부 건물로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병원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빨간 점선은 폭격으로 사라진 건물 부분. 2019.12.9 [주한미군 출신 노르브 파예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제는 일본육군 조병창 유적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국내 강제동원의 대표적 시설이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인 조사나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병창 유적이 미군기지 내부에 있어 출입이 제한된 데다 국내 강제동원에 대한 관심이 국외 강제동원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취재팀이 옛 사진을 토대로 조병창 현장을 확인한 결과, 1939년 조성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유적 건물이 20동 이상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들 건물이 일제강점기 당시 정확하게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캠프마켓 내 유적 건물 20여개 동 가운데 3개 동이 조병창 공장으로 사용한 건물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앞서 문화재청도 2012년 캠프마켓 안에 있는 근대건축물을 조사해 93개 건물 중 34개 동이 1952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개별 건물의 용도나 보존 정도 등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단 건물의 용도 등을 조사해야 보존 대상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밀조사를 한 후 보존 및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조병창 유적이 미군기지 안에 있어 오히려 1939년 조성됐을 당시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병창은 일제 병참 기지화의 흔적이나 국내 강제동원 현장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한국 산업발전의 중심이 되는 부평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조병창 무기 보관고로 보이는 함봉산 일대 지하토굴
조병창 무기 보관고로 보이는 함봉산 일대 지하토굴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육군 조병창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피해 사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과거 조병창 명부자료 등에 따르면 조병창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조선인 1만명 이상을 강제동원한 시설이지만, 이들의 노동력 착취 피해 사례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조병창은 일본 본토 밖에 있던 군사시설이다 보니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군은 패망 직후 조병창에서 철수하면서 일본으로 가져갈 수 없는 문서를 통째로 소각해, 이곳이 과거 어떻게 운영됐는지를 알려면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구술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고령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조병창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병창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12명 구술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 온 이상의 인천대 초빙교수는 구술자 12명 가운데 연락이 끊긴 사람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상의 교수는 "최근 구술자료집 간행을 앞두고 구술자 5명에게 연락을 했더니 3명이 없는 번호로 나왔다"며 "엄연히 후대에 전달할 수 있는 역사가 사라지게 된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우선적으로 조병창에 대한 조사가 진행돼야 지역사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조병창 일대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쓰비시 줄사택
미쓰비시 줄사택

[인천시 부평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동안 국외동원과 비교해 관심이 낮았던 국내동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강제동원과 관련해서는 미쓰비시중공업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판결 등으로 국외 강제동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총 연인원 800만명 가운데 국내 강제동원 숫자가 650만여명으로 국외보다도 많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국외 강제동원 못지않게 국내 강제동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육군 조병창은 국내 강제동원 시설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대표적 현장으로 가장 먼저 조사가 필요하다.

이곳 이외에도 국내 강제동원 현장은 8천5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상의 교수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배상을 두고 국외동원만 이야기되다 보니 국내동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했다"며 "국외동원보다 훨씬 더 많은 피해자가 있는 국내동원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에 동원된 피해자는 신고해도 국내에 동원됐다는 이유로 배상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며 "한국 정부가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겁을 먹고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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