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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드라마가 되다

송고시간2019-12-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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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선보인 '전람회의 그림'은 매우 특별했다. 그것은 음악으로 표현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드라마이자 영화 같았다. 모든 음표가 말을 건네 오고 온갖 악기 소리는 구체적인 사건과 장면들을 떠올리게 했다. 과연 오페라와 발레 등 극음악에 익숙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연주는 일반적인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와는 확연히 달랐다.

지난 10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극장 오케스트라의 개성을 드러낸 극적인 작품해석, 러시아 악단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소리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특히 후반부 연주는 탁월했다. 본 공연 프로그램으로 연주한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의 라벨 편곡 버전뿐 아니라 앙코르로 들려준 스트라빈스키 '불새' 중 자장가와 피날레,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에 이르기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주 덕분에, 관객들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환호하며 기립 박수를 보냈다.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서울=연합뉴스)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1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2019.12.11 [롯데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번 공연 주요 곡목으로 연주한 '전람회의 그림'은 작곡가 무소르그스키가 그의 친구이자 건축가인 빅터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를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난쟁이' '오래된 성' '리모주의 시장' 등 하르트만이 남긴 여러 그림은 그 하나하나가 짧은 '음화'가 되어 '전람회의 그림' 전곡을 구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곡은 하나의 그림을 보고 다음 그림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발걸음을 나타낸 '프롬나드'로 연결된다.

'전람회의 그림' 도입부 역시 '프롬나드'로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 프롬나드에서부터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트럼펫 수석 주자의 연주는 귀가 번쩍 뜨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 러시아 트럼펫 특유의 시원한 울림은 순식간에 콘서트홀을 전람회장으로 바꾸어놓았다. 첫 그림 '난쟁이'에서부터 지휘자 게르기예프 지휘는 남달랐다. 잔향이 풍부한 롯데콘서트홀 음향을 고려한 덕분인지 그는 다소 느린 템포로 음이 충분히 울리도록 지휘했고, 마치 화폭에 세심하게 붓질을 하듯 한 음 한 음을 의미심장하게 표현하도록 단원들을 유도해갔다. 덕분에 첫 그림 '난쟁이'에서부터 음울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흐르며 일그러진 표정의 난쟁이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서울=연합뉴스) 발레리 게리기예프(중앙)와 마린스키 단원들이 10일 저녁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를 마친 후 무대에 서 있다. 2019.12.11 [롯데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또 다른 프롬나드에 이어 '오래된 성'이 연주되자 그림은 점차 드라마가 되어갔다. 본래 이 곡 바탕이 되는 하르트만 그림은 중세의 오래된 성 앞에서 음유시인이 노래를 읊조리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지만, 바순과 색소폰 솔로로 표현한 음유시인의 노래는 한 편의 슬픈 드라마처럼 다가왔다. 이윽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비를 그려낸 그림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쉬밀레'에선 가난한 쉬밀레 모습을 나타낸 약음기 낀 트럼펫의 활약이 대단했다.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트럼펫 수석 주자는 악기에 약음기를 낀 상태에서도 미묘하게 강약을 조절하며 쉬밀레의 비굴한 태도와 비참한 처지를 세심하게 표현해내며 깊은 인상을 주었다.

공연 전반부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협주곡을 깔끔하게 협연해내 갈채를 받았고 앙코르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 2번 중 안단테를 연주했다. 음악회 첫 곡으로는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도 연주되었는데, 흔히 '인상주의 음악'으로 분류되는 드뷔시 작품은 빛이 표면을 그려낸 듯한 모네 그림에 비유되곤 하지만 게르기예프가 이끈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들려준 드뷔시 음악은 매우 달랐다. 그것은 인상주의 화가 중에서도 견고한 화풍을 지닌 세잔 그림을 닮아있었다. 드뷔시 곡은 가볍게 부유하는 음색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신선한 해석이었다.

클라라 주미 강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클라라 주미 강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서울=연합뉴스) 클라라 주미 강이 1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herena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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