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나눔동행] "쌀 항아리 하나에 생사 갈려"…기부천사된 시골농부

송고시간2019-12-15 09:05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두 동생 목숨 앗아간 끔찍한 가난…"살기 위해 밥 훔친 죄 갚아야"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쌀 1천200가마·현금 7천여만원 나눔 지속

(용인=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나의 평생소원은 쌀이 가득 찬 항아리 하나 갖고 사는 것입니다."

쌀 기부 천사 황규열씨
쌀 기부 천사 황규열씨

(용인=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29년째 농사지은 쌀을 기부하고 있는 황규열(78) 씨가 평생 기부를 하면서 느낀 점을 적어 자신에게 보낸 편지. 2019.12.15 hedgehog@yna.co.kr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에서 농사를 짓는 황규열(78) 씨는 지역에서 '쌀 기부 천사'로 불린다.

1991년 농사지은 쌀 10가마로 장학금을 내기 시작해 올해까지 29년째 한결같은 선행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런 별명이 붙을 만하다.

인터뷰를 위해 집을 찾아간 기자에게 황씨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제 인생 얘기를 들어보라"며 가난하기에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사연을 풀어놓았다.

황씨가 그렇게도 기부에 몰입하는 이유는 이를 악물고 견뎌야만 했던 '처절한 가난' 때문이다.

그는 14대째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황희정승 22대손'이라고 집안 자랑을 하지만,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는 금세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린시절 기억은 혹독한 가난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말라붙은 엄마의 젖을 세 살 남동생이 물고 있는 광경을 본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동생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3개월 만에 배를 곯다가 죽었다. 이른바 아사(餓死)였다.

어머니와 동생을 잃은 뒤에도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맞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지만, 미처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그의 가족들은 고향에 남아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해야만 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남의 집 부엌에 몰래 들어가 밥을 훔쳐 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끼니조차 못 챙기는 궁핍 속에서도 새어머니는 딸을 출산했다. 그러나 그 여동생도 첫돌이 되기 전 세상을 떴다.

남동생과 여동생이 연거푸 굶어 죽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는 오열했다. 그는 당시 회상하며 "참 모진 목숨을 살았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백봉초등학교 다니면서 아버지를 도와 1천평의 논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말이 논이지 모래투성이의 척박한 땅이다 보니 벼 대신 생명력이 강한 호밀을 심어야만 수확이 가능했다.

겨우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던 집안 형편 때문에 그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다닌 뒤 학업을 포기했다.

이후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병석에 누우면서 17살이던 그는 소년가장이 돼야 했다.

장작을 팔고 저수지 공사장 막일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이때 황씨는 쌀이 든 항아리 하나만 있어도 부자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쌀 항아리 하나는 그에게 가난을 벗어나는 목표이자, 훗날 쌀 기부를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장학금에 쌀까지 기부한 황규열씨
장학금에 쌀까지 기부한 황규열씨

(용인=연합뉴스) 70평생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 황규열(오른쪽)씨가 지난 2012년 12월 21일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20㎏짜리 쌀 100포(500만원 상당)를 백암면사무소에 기부하는 모습. 그는 2011년 모교인 백암중고등학교에 5천만원, 용인시민장학회에 1천500만원을 쾌척하기도 했다.[용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삶의 목표가 생기자 암울했던 인생에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송아지를 한 마리 사들였는데, 이 소가 무럭무럭 자라 훗날 논 세마지기(1마지기는 약 200평)를 구입하는 종잣돈이 됐다.

그 논에서 억척스럽게 농사를 짓고 재산을 불리던 그는 마침내 스물네 마지기(4천800평) 농사꾼으로 성장했다.

가난의 굴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뒤에야 뒤늦은 결혼을 했고, 슬하에 1남 3녀를 뒀다.

자수성가한 농사꾼으로 살던 그에게 1991년 '기부 천사'가 될 운명 같은 날이 찾아왔다.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이 "백암중·고등학교 장학회 만들려는데, 같이 하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그 제안을 곱씹으면서 그는 배고픔과 밥 도둑질, 배우지 못한 한을 풀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인재 키우는 일인데, 못 본 척할 수 없다. 쌀 10가마를 내놓자"고 말했다. 물론 아내는 펄쩍 뛰었다.

몸이 부서져라 농사지어 봤자 한해 쌀 40∼50가마를 수확하던 때였으니, 10가마 기부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렵게 아내를 설득한 그는 쌀 10가마를 내다 판 돈 50만원을 장학회에 내놨다. 당시 사람들이 낸 장학기금은 대개 2만∼3만원 선이었다.

그의 '통 큰 기부'에 장학회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황씨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기부의 참맛을 알게 된 그는 이후 꾸준히 쌀을 내다 팔면서 기부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칠순이 되던 2011년 큰 '사고'를 쳤다.

"그동안 고생 고생하며 살았으니, 칠순잔치나 멋지게 하자"는 아내의 말에 "칠순이니까 7천만원을 장학금으로 내고 싶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해 11월 5천만원이 든 통장과 도장을 기부했다. 큰돈을 쾌척하면서 그는 더 많이 기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곧바로 쌀 100가마를 팔아 마련한 1천500만원을 들고 용인시청 시장실을 찾아가 '용인시민장학회'에 쓰라고 줬다.

아내가 칠순이던 이듬해에는 쌀 100가마를 백암면사무소에 전달했다.

이튿날 그에게는 "고맙다. 쌀 잘 먹겠다"는 경로당 어르신들의 감사 전화가 쇄도했다.

용인 쌀기부천사가 받은 표창장
용인 쌀기부천사가 받은 표창장

(용인=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29년째 농사지은 쌀을 기부하고 있는 황규열(78) 씨가 평생 기부를 한 공로로 받은 각종 표창장. 2019.12.15 hedgehog@yna.co.kr

뿌듯한 나눔의 보람을 느낀 그는 2013년 백암면, 2014년 처인구청에 쌀 100가마씩을 기부했고, 이후 용인시에도 쌀 기부를 이어 나갔다. 장학금 500만원도 함께 기탁했다.

이렇게 29년간 그가 기부한 쌀은 1천200가마에 이르고, 백암장학회와 용인시인재육성재단에 기탁한 돈도 7천만원이 넘는다.

그는 2014년 남다른 봉사를 실천한 공로로 청룡봉사상을 받았다.

이어 2016년에는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비롯해 대한노인회 표창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의 기부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에게도 옮겨졌다. 그가 기부할 쌀을 찧던 장평정미소 김주원(41) 대표가 2016년부터 쌀 100가마를 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황씨는 "젊은 사람이 쌀 기부에 동참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보다 많은 사람에게 기부문화가 확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기부를 시작하면서 고향 용인을 더 사랑하게 됐다.

기부 천사로 이름을 알린 그는 지난해 1월 6일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용인 구간 첫 주자로 나서 연신 "용인시민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배운 것 없는 시골 농사꾼에게 국가 행사 대표를 맡겨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조선 실학자인 반계 유형원 선생 묘소가 마을 인근에 있는 것을 우연히 안 뒤 '반계숭모회'를 조직해 농민을 위한 책을 썼던 선생을 기리고 있다.

언제까지 기부를 이어갈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는 "30년간 기부할 계획이었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며 껄껄 웃었다. 기부가 계속 이어질 것을 암시하는 웃음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그는 자신에게 쓴 편지라면서 A4용지 한장을 내밀었다.

쌀기부 천사 황규열씨
쌀기부 천사 황규열씨

(용인=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29년째 농사지은 쌀을 기부하고 있는 황규열(78) 씨가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자신의 집에서 기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2019.12.15 hedgehog@yna.co.kr

자신이 겪은 가난과 고통, 결혼, 기부의 마음을 스스로 정리한 글이었다.

"배가 고파 쌀 한 항아리 담아놓고 사는 게 평생소원이라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쌀 1천200가마로 불우이웃을 도왔으니 배곯던 설움도 이렇게 달래졌구나. 참으로 멋진 인생을 살고 있구나…(중략)…30년간 용인시민과 나누고 살겠다는 약속을 생각하며 남은 생도 잘살아라."

황씨는 옹고집 기부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hedgehog@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