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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화성사건' 검·경 기막힌 행태…'네 탓' 자격 없다

송고시간2019-12-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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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30여 년 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과 경찰의 당시 행태가 실망감을 넘어 충격과 분노를 낳고 있다. 특히 경찰은 단순히 부실 수사에서 그친 게 아니라 피해자 유골을 발견하고도 이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7일 화성 8차 사건 수사라인에 있던 경찰관과 검사 등 8명을 형사입건했다고 발표했다. 1989년 7월 발생한 초등생 김 모(8)양 실종사건을 맡았던 당시 형사계장 A씨와 형사 등 2명에게는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등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김 양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확인하고도 고의로 은닉했다고 한다. 법 집행의 최일선에서 엄정한 공무집행을 해야 할 경찰 공무원들이 저지른 만행으로,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은 당시 경찰이 김 양 아버지의 거듭된 수사 요청을 외면하고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했다고 알려져 왔는데, 사실은 피해자 시신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놓고 30년 동안이나 시치미를 뗀 것이다. 아무리 연쇄살인 사건 발생에 큰 압박을 느꼈다고 해도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경찰이 당시 김 양 아버지 등을 조사하면서 피해자의 줄넘기에 관해 질문까지 했다는 대목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경찰의 시신 은폐는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임을 자백한 이춘재의 진술과 지역 주민의 증언으로 30년 만에 드러났다. 이춘재가 김 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면서 당시 피해자 두 손목을 줄넘기로 묶었다고 털어놓은 데 이어 1989년 초겨울 형사계장 A씨와 함께 수색하던 도중 줄넘기에 묶인 양손 뼈를 발견했다는 주민 진술도 나왔다.

당시 경찰과 검찰이 8차 사건 용의자였던 윤 모(52) 씨를 불법 체포해 75시간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사실도 경찰의 재수사에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담당 검사였던 변호사도 경찰관들과 함께 입건됐다. 검찰은 불법 행위 연루 여부를 떠나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경찰 수사를 지휘하고 사건을 송치받아 자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걸러내지 못한 채 그대로 재판에 넘긴 것이다. 요즘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력 견제'와 '수사의 질' 운운하며 수사 지휘권과 사건 종결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한 검찰의 모습을 생각하면 씁쓸함을 떨칠 수가 없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재수사를 보면서 가장 궁금해지는 건 당시 경찰과 검찰의 바닥이 과연 어느 수준이었나 하는 점이다. 본인 자백과 여러 증거 등으로 이춘재가 진범일 가능성이 거의 굳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기관의 한심한 행태가 계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검·경은 나란히 엎드려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네 탓 공방'을 멈출 줄 모른다. 애꿎은 시민에게 누명을 씌워 옥살이를 시키고,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큰 실망감을 안긴 것에 대해 반성을 하기보다는 행여나 수사권 조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보인다. 국민이 선뜻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다. 백발노인이 된 김 양 아버지가 최근 딸 시신 수색작업이 펼쳐진 현장을 찾아 "자식 잃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검찰과 경찰은 이 비통한 모습을 보고도 이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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