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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흰 쥐의 해' 다산과 풍요를 부르다

송고시간2020-01-2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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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쥐띠해, 그중에서도 흰 쥐의 해다.

경자년의 '자'(子)는 십이지지의 첫 번째 동물인 쥐를 가리키고, 십간의 하나인 경(庚)은 오행 상 금(金)인데, 금은 흰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쥐띠해를 풍요와 희망, 기회가 드는 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쥐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식복(食福)과 함께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고들 했다.

경자년을 맞아 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봤다.

민들레 잎을 갉아먹는 쥐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민들레 잎을 갉아먹는 쥐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다산과 풍요, 근면의 상징

보통 쥐라고 하면 나쁜 병을 옮기고 곡식을 축내는 백해무익한 동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 민속에서 쥐는 다산과 풍요, 영민함과 근면을 상징하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쥐가 다산의 상징이 된 것은 왕성한 번식력 때문이다. 암컷 쥐의 임신 기간은 17∼30일로, 1년에 6∼7회 새끼를 낳고, 한 배에 9마리까지 낳는다.

아무런 생태적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쥐 한 쌍은 1년 동안 무려 2천400마리로 불어날 수 있다고 한다. 거의 곤충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처럼 왕성한 번식력 덕분에 전 세계에 서식하는 쥐는 약 1천800종, 100억 마리에 이른다. 이는 모든 포유류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삼국유사 김유신 조에 실린 추남의 환생담은 쥐의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생긴 이야기다.

고구려의 용한 점쟁이인 추남은 왕비가 음양의 도를 역행하여 그 징후가 나타날 것이라는 점괘를 냈다. 왕과 왕비는 크게 노했고, 그에게 상자 속에 들어있는 쥐의 수를 정확히 맞히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추남은 여덟 마리가 들어 있다고 답했지만, 상자 속에는 한 마리만 있었다.

왕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쥐의 배를 갈라보게 했는데 뱃속에는 일곱 마리의 새끼가 있었다. 그제야 추남의 점괘가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추남은 이미 죽은 뒤였다.

농경사회에서 다산과 풍요는 곧, 풍농을 의미하는 것으로, 쥐를 의미하는 한자인 서(鼠)자를 부적으로 그려 붙여 풍농을 기원하는 풍속도 남아있다.

쥐는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 놓는 습성이 있어 부를 가져다주고 숨겨 놓은 재물을 지키는 존재로도 여겨졌다. 그래서 '쥐띠가 밤에 태어나면 부자로 산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재산을 모으는 소질이 있다'는 쥐띠의 사주풀이에도, '식충이(밥만 축내는 게으른 사람)는 쥐 고기를 먹이면 낫는다'는 속신(俗信)에도 쥐의 이런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쥐 부적
쥐 부적

쥐를 의미하는 한자인 서(鼠)를 그려 넣어 풍농을 기원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미래를 예시하는 영물

쥐는 자연의 이변이나 닥쳐올 위험을 예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영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혜공왕 5년 11월의 기록에 보면 "치악현에서 8천여 마리나 됨직한 쥐 떼가 이동하는 이변이 있고 그해 눈이 내리지 않았다"라는 글이 있다. 여기서 눈이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다음 해의 농사가 흉년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선원들에게는 '쥐 떼가 배에서 내리면 난파한다'라거나 '쥐가 없는 배는 타지 않는다'라는 속신이 있는데 이 역시 위험을 예견하는 쥐의 신통한 능력 때문에 생긴 믿음이다.

쥐가 집의 붕괴를 예견하고 집주인을 구했다는 설화도 있다.

옛날 어느 부잣집에 쥐가 아주 많았다. 하인들은 쥐를 잡으려고 사방에 덫을 놓았다. 주인은 살려고 태어난 짐승을 함부로 죽일 수 없다며 쥐덫을 모두 치우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백 마리의 쥐가 서로 꼬리를 물고 집 밖으로 나갔다. 집안의 사람들도 그것을 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집이 폭삭 무너졌다. 쥐가 그 집 사람들을 살린 것이다.

쥐의 예지력 덕분에 일부 해안 도서 지방에서는 쥐를 수호신으로 섬기기도 한다. 전남 비금도 월포리와 우이도 진리, 대촌리, 경치리, 서소우이도에서는 당(堂)에서 쥐신을 모신다.

쥐덫
쥐덫

나무틀 안에 미끼를 넣어 두고서 쥐가 이를 물면 무거운 통나무가 떨어져 쥐를 잡게 되어 있다.[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지혜롭고 약삭빠른 동물

무가(巫歌)의 일종인 '창세가'에서 쥐는 조물주로 등장하는 미륵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갖춘 존재로 표현된다.

미륵이 하늘과 땅을 가르고 해와 달의 숫자를 조정한 후, 물과 불의 근본을 알기 위해 먼저 메뚜기와 개구리에게 물었다. 답을 하지 못한 메뚜기와 개구리는 대신 생쥐에게 이를 물어보라고 한다. 생쥐는 미륵에게 물과 불의 근원을 알려주고, 그 대가로 이 세상의 뒤주를 차지하게 된다.

쥐가 십이지지의 첫 번째 동물이 된 사연을 말해 주는 설화에서도 영리한 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옛날 옛적 옥황상제가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고자 했다. 그 기준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정월 초하루에 제일 먼저 천상의 문을 통과한 짐승부터 지위를 주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짐승들은 기뻐하며 저마다 먼저 도착하기 위한 훈련을 했다. 그중에서도 소가 가장 열심히 수련했다.

이를 지켜보던 쥐는 작고 미약한 자신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제일 열심인 소에게 붙었다.

정월 초하루가 되어 동물들이 앞다퉈 달려왔는데, 소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소에게 붙어 있던 쥐가 뛰어 내리면서 가장 먼저 문을 통과했다. 소는 분했지만 두 번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쥐가 십이지지의 첫머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미약한 힘을 일찍 파악하고 약삭빠르게 꾀를 쓴 덕분이었다.

곱돌로 만든 쥐 모양 석상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곱돌로 만든 쥐 모양 석상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우리 민속 문화에서 쥐가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사람의 손톱과 발톱을 먹고 그 사람으로 둔갑해 사람을 괴롭히는 부정한 동물로 등장하기도 하고, 간신이나 수탈자로 그려지기도 했다.

새해에는 부디 이런 부정적인 쥐가 아닌 긍정적인 쥐들만 나타나기를 기원해본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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