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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손길 스쳐면 뚝딱"…금남의 집 관리사 '귀신잡는 해병'

송고시간2020-01-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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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9여단 김기용 상사 일행 5년째 미혼모 시설 찾아 궂은일 도맡아

전기·중장비 등 자격증 30여종 보유…"봉사 통해 오히려 얻은 것 많아"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미혼모 보호시설인 애서원. '금남(禁男) 구역'에 건장한 남성 예닐곱 명이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이곳저곳을 손본다.

해병대 9여단 김기용 상사
해병대 9여단 김기용 상사

[촬영 백나용]

해병대 9여단 김기용(43) 상사와 대원들은 2016년부터 5년째 한 주 걸러 한 번씩 토요일이면 이곳을 찾는다. 이들은 차량에서 내린 오전 9시부터 귀대하는 오후 5시까지 쉴새 없이 쓸고 닦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수명 다한 전등 갈아 끼우는 일부터 낡은 울타리 보수, 강풍에 쓰러진 나무 제거, 분리수거장 정리정돈까지 눈에 띄는 모든 곳에 이들의 손길이 닿는다.

'귀신잡는 해병'으로 불리는 거친 바다 사나이들이라고 힘쓰는 일만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공기 압축기를 이용해 먼지 한톨 없이 건물 안팎을 청소하고,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길이의 창문털이를 동원해 얼룩진 창문까지 투명하게 탈바꿈 시킨다.

설거지하는 솜씨도 일품이다.

보는 이마다 "해병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한 가지 일을 해도 야무진 김 상사는 아니나 다를까 30여개의 국가공인 자격증을 가진 능력자다.

포크레인 등 중장비와 전기 기능사를 비롯해 부대 급양관리담당답게 한식·중식·일식·복어 조리 자격증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 덕분에 그의 손길이 스치기만해도 고장나거나 말썽부리던 시설 이곳저곳이 거짓말처럼 멀쩡해진다.

불 나간 전등을 교체하고 있는 해병대 9여단 김기용 상사와 대원들
불 나간 전등을 교체하고 있는 해병대 9여단 김기용 상사와 대원들

[김기용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상사와 애서원의 인연은 5년 전 해병대 9여단 성인지력 향상 교육 강사였던 임애덕 애서원 원장의 제의로 시작됐다.

당시 주말이면 으레 바다에 나가 환경정화활동을 하곤했던 김 상사는 조금 더 보람있는 일을 하자는 각오로 흔쾌히 제의를 수락했다.

김 상사는 "군부대는 주말에도 부대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는 없다"며 "때마침 봉사하러 가는 길이 해안도로라서 푸른 바다를 보며 스트레스도 풀고, 대원과 공감대 형성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물론 미혼모 시설 봉사활동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남성끼리 부대끼던 군부대를 벗어나 여성 전용시설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조심스러웠다.

봉사활동 1년간은 그곳 생활인과 점심시간까지 서로 구분했다.

그러나 신뢰가 쌓이면서 경계는 허물어졌다. 이제는 김 상사 일행이 오는 날이면 시설 아이들이 먼저 달려와 손을 내밀고 장난을 걸 정도가 됐다.

김 상사의 휴대전화에는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활짝 웃는 사진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격주 봉사활동이 힘들만도 한데, 그는 이곳을 찾지 않는 주말은 독거노인이나 다문화가정을 찾아다니며 도배 봉사활동을 한다. 이것마저 쉬는 날에는 헌혈을 하러간다.

제주시 조천읍 독거노인 집 외벽 페인트 칠을 하고 있는 김기용 상사와 대원들
제주시 조천읍 독거노인 집 외벽 페인트 칠을 하고 있는 김기용 상사와 대원들

[김기용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터뷰 도중 기자가 그의 봉사활동에 감탄을 내뱉자 그는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봉사활동을 한다면 주변에서 훌륭하다고 칭찬하지만, 그 것도 적성에 맞아야 가능하다"며 "한 번은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 집에 목욕봉사 갔는데, 몸을 씻기고 식사를 돕는 일이 나와 맞지 않아 그 뒤로 접었다"고 말했다.

그냥 이 일이 적성에 맞고 보람 있어 하는 것일 뿐, 칭찬을 들을 만큼 대단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그는 "봉사를 통해 오히려 내가 얻은 게 더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예전에는 다가오는 대원이 없었지만, 지금은 전역한 대원과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며 "이곳 봉사활동을 계기로 전역 후에도 사회 각 분야에서 각자의 처지에 맞는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대원들이 많아 보람이 크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올해 봄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다.

봉사현장에서 만난 사회복지사가 그의 예비신부가 됐다.

그는 제주도 양성평등 기념행사장에서 감사패를 받을 당시 사진을 찍어주던 예비신부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봉사가 인연을 끈이 돼 마침내 인생을 함께 하기로 했다.

김 상사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소중한 인연을 만난 것만 보더라도 내가 오히려 덕을 본 게 많은 수혜자"라고 강조했다.

애서원 외관 정비를 하고 있는 해병대 9여단 김기용 상사와 대원들
애서원 외관 정비를 하고 있는 해병대 9여단 김기용 상사와 대원들

[김기용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오랫동안 봉사를 이어온 비결에 대해 그는 주변의 도움 때문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는 "처음에는 내 승용차를 몰고 다녔지만, 3년 전부터는 부대에서 차량을 지원해 주고 있다"며 "차량 지원이 없었다면 여태껏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힘든 부대생활 속에서 주말을 기꺼이 반납해주는 대원들에게 언제나 미안하고 감사함을 느낀다"며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장병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김 상사는 내년 제주 생활을 마감한 뒤 인천 연평도로 전출하게 된다.

그는 "연평도에서 1년 6개월 정도 근무한 뒤 다시 제주로 내려올 생각"이라며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도 봉사가 이어지도록 후배들에게 다양한 수리·청소 기술 등을 전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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