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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뒷맛] 믿었던 셀럽에게서 산 간장게장의 배반?

송고시간2020-0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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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이달 초 트위터 코리아의 '실시간 트렌드'(실시간으로 가장 많이 트윗 되는 키워드)는 한동안 '간장게장'이 차지했다. TV 음식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간장게장을 먹음직스럽게 발라 먹는 모습이 방영된 직후도 아니었는데 많은 이들의 관심이 간장게장에 쏠린 이유는 이랬다.

이름이 알려진 외식 사업가이자 SNS에서도 다수의 팔로워를 보유한 이모 대표가 지난 가을 "'간장게장은 왜 이렇게 비쌀까' 하는 문제의식이 드는데 어촌계 직거래로 암꽃게를 한 트럭(7.5t) 사서 담그면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 같다"며 트위터를 통해 공동 구매를 제안했다.

그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서 간장게장을 구매할 이들을 모집했고 모인 금액은 지난 15일 현재 1억6천300만원을 넘어섰다. 당초 목표금액(5천만원)의 327%를 모은 것. 텀블벅 측도 "음식 펀딩으로는 높은 달성률"이라고 평가했다. 포털 사이트를 통한 판매까지 합치면 판매액이 3억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직거래로 생산자와 최종 소비자가 모두 득을 보자는 의도로 호기롭게 출발한 셈. 그러나 첫 배송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달 진행된 1차 배송분 가운데 플라스틱 게장 용기가 파손돼 내용물이 샌 채로 배달됐다는 소비자 불만이 제기된 것.

이 대표는 "사고 물량을 재발송하고 환불을 원하는 이들께 전부 환불하겠다"며 "간장게장이라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식품을 젊은 세대 SNS 마켓을 통해 선보이는 실험을 해보고자 한 모험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달 초 진행된 2차 발송에서도 이어졌다. 상품에 만족한다는 후기 글도 다수 보였지만, 배송 도중 간장이 샜다는 글들이 또 올라온 것. 배송 상태보다 더 큰 불만이 제기된 부분은 게살이 녹았거나 지나치게 짜게 양념이 밴 상태로 왔다는 등 음식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간장게장.
간장게장.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촬영 김재근]

"여성 사업가의 실수를 지나치게 비난하지 말자"거나 "대다수 구매자인 여성의 피해는 보이지 않느냐"는 등 때아닌 젠더 논쟁까지 촉발되며 유명인이 SNS를 통해 보관과 유통이 까다로운 게장이라는 음식을 판매한 일의 여파는 한동안 이어졌다.

SNS상에서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가 상품 광고의 전면에 나서거나 아예 제조·유통사를 차려 판매를 하는 일은 이미 흔한 일이 됐다.

그러나 판매상품이 고도의 품질 관리와 유통 과정에서의 노하우가 필요한 음식일 경우 SNS를 통한 매매가 좀 더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위터를 휩쓴 간장게장 건과 관련해서 칼럼니스트이자 한의사인 임예인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명망 장사'가 일으킬 수밖에 없는 폐단인 것 같다. 하물며 식품을 솔직히 뭘 믿고 사나"라고 꼬집었다.

현행법상 온라인으로 식품을 판매하려면 즉석식품 제조가공업과 소매업(업태) 및 전자상거래업(종목)에만 등록하면 된다. 허가가 아닌 신고 절차여서, 간단한 요건만 갖춘 뒤 관할 지자체에 판매를 진행하려는 인터넷 도메인 등만 적어내면 신고 절차가 완료된다. 텀블벅을 통해 간장게장을 판매한 업체 역시 텀블벅에 즉석식품 제조가공업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제조·판매자와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대형 유통업체를 거치는 납품 등의 형태로 판매하려면 식품제조업 허가가 필요하다. 이는 간단한 행정 절차만 갖추면 되는 즉석식품 제조가공업과 달리 제조·유통 시설과 과정에 대한 식품 당국의 까다로운 정기 검증을 거쳐야 한다. 비용과 시간을 훨씬 더 많이 들여야 하는 대신 대형 업체의 브랜드를 달거나 유통망을 이용할 수 있어 소비자 공신력을 높일 수 있다.

호박즙 제품에서 곰팡이가 나왔다는 제보에 대한 소비자 응대를 두고 논란이 확산하면서 회사의 대표적인 인플루언서였던 임지현 상무가 사퇴하고 식품 사업을 중단한 부건에프앤씨도 호박즙 판매 당시 식품제조업 허가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셀럽이라 하더라도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식품가공업 허가를 받은 뒤에 제품을 팔기는 어려워서 즉석식품 제조가공업으로 인터넷 판매를 하기로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자신의 명성을 믿고 구입을 선택한 소비자를 고려해 품질 관리에 보다 신경을 썼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충남 태안에 위치한 영어(營漁)조합법인(5명 이상이 만든 협업적 어업 경영 조직)으로 서울 등에서도 게장 전문점을 운영하는 H 업체 관계자는 "간장 양념과 게를 함께 넣어 보내면 게살이 녹기 때문에 게를 진공 포장해 냉동하고 간장을 따로 담는다"며 10년 넘게 영업을 하면서 쌓은 게장 배송 노하우를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의 게장 전문점 J식당은 "게장의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하루 이상이 걸리는 택배는 물론 인근 지역 배달도 안 한다"고 아예 온라인 판매를 시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식품의 경우 맛이나 배송 상태에 대한 소비자 불만에 그칠 수 있지만, 의학적 효능·효과를 내세운 건강기능식, 다이어트 관련 제품을 판매했을 경우 보건 당국의 철퇴를 맞기도 한다.

이달 초 식약처에 적발된 호박 앰플
이달 초 식약처에 적발된 호박 앰플

[식약처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9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호박으로 제조된 액상차를 판매하면서 원재료의 효능·효과를 과대 광고한 체험기를 올린 유명 연예인의 아내 한모씨와 유명 유튜버 등 15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판매자 측은 변해가는 식품 판매 시장에서 온라인 영향력을 활용한 SNS 판매를 안 할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간장게장을 판매한 이 대표는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음식 시장에서 점점 외식의 비율이 줄고 집에서 가정간편식 등을 주문해 먹는 추세이기 때문에 온라인 마케팅을 간과할 수 없어 이번 게장 판매를 시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벽배송 업체 등에 입점해 판매해도 배송 사고는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게장을 맛있게 먹었다는 쪽지도 많이 왔는데 부정적 평가가 널리 퍼진 부분이 마음이 아프다. 배송 문제가 제기된 이후 승용차를 이용해 직접 가져다주거나 환불 요구가 있을 때는 100% 환불해드렸다"면서 "이번 시도로 8천만원의 손해를 봤고 고생한 직원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도 있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배운 점도 많다"면서 더 신중하게 SNS 마케팅을 하겠다고 말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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