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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떻게 '제국'의 정체를 감출 수 있었나

송고시간2020-01-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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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임머바르 '미국, 제국의 연대기' 번역 출간

(서울 = 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미국의 '제국주의'나 '제국적 속성'을 비난하는 세계 곳곳의 목소리는 한시도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은 제국인가. 황제가 통치하지 않는 민주공화국을, 그것도 식민지를 거느리지도 않고 전쟁은 하지만 영토 확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나라를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대니얼 임머바르 미국 노스웨스턴대 역사학과 교수의 '미국, 제국의 연대기'(원제 How to Hide an Empire: A History of the Greater United States·글항아리)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건국 초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벌인 전쟁과 확장의 역사를 탐구한다. 저자의 결론은 미국은 13개 주 연합체로 출발해 애팔래치아 산맥 너머 인디언 영역으로 뻗어 나가던 시절부터 내내 제국의 성격을 지녔으며 지금도 제국의 속성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대영제국이나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프랑스와 같은 식민 제국이 아닌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미국이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늘리기는커녕 전쟁에 이기고도 점령지를 되돌려 주거나 독립시켜줬다는 점에서다.

이 간극을 설명해 줄 수 있는 핵심 열쇠는 미국이 전 세계 곳곳에 보유하는 '영토(territory)'다. 푸에르토리코, 괌, 미국령 사모아,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북마리아나 제도와 같은 영토에 거주하는 인구는 400만 명에 달한다. 이들 지역은 보기에 따라 미국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약 800개에 이르는 해외기지를 보유한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미국을 제외한 국가가 보유한 해외기지를 모두 합해 봐야 30여개에 불과한 것을 보면 미국의 해외기지 수가 얼마나 많은 것인지 알 수 있다. 미국은 왜 이들 지역을 자국 영토에 편입하지도, 식민지로 거느리지도 않고 이토록 복잡한 길을 택하게 된 것일까.

미국의 로고(Logo) 지도
미국의 로고(Logo) 지도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진 미국 국토에 대한 이미지는 정치학자 베니딕트 앤더슨이 '로고 지도'라고 부른 이 같은 그림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정확히 미국의 영역을 나타내려면 알래스카, 하와이는 물론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사모아, 괌과 같은 영토를 포함해야 한다.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41년 기준 '확장된 미국(Greater United States)' 지도
1941년 기준 '확장된 미국(Greater United States)' 지도

(맨 윗줄 왼쪽부터) 알래스카, 미국 본토, (가운뎃줄) 괌, 미국령 사모아, 필리핀, 하와이,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아랫줄·면적은 다른 지역과 같은 비례가 아님) 태평양 외딴섬(왼쪽), 카리브해 외딴섬(오른쪽)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도 건국 초기에는 왕성한 영토욕을 숨기지 않았다. 독립 이후 영토 확장 과정은 어찌 보면 제국주의적 팽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땅의 원래 주인이라고 할 인디언들을 때로는 속이고, 때로는 회유하고, 많은 경우 잔혹하게 학살하고 내쫓아 토지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보면 더욱더 그렇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서부 개척이 마무리된 후에는 전쟁이나 대양 너머 항해를 통해 새 땅을 확보하기도 했다.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쿠바, 필리핀 등지를 얻고 천연비료인 해조분(海鳥糞)을 조달하기 위해 카리브해와 태평양의 섬 100여곳을 차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미국이 연방에 편입시킨 곳은 하와이와 알래스카뿐이다. 스페인 전쟁으로 차지한 필리핀은 독립 시켜 줬고 2차 대전 승리 후 패전국 일본과 일본의 방대한 식민지에 대해서도 전혀 욕심을 내지 않았다. 푸에르토리코와 괌 등은 '영토'라는 모호한 지위로 남겨뒀을 뿐 국내외 일각의 거센 요구에도 연방의 일원으로 편입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그 이유로 우선 이들 지역의 인종 문제를 들었다. 수백만 유색인종이 거주하고 앞으로도 백인 인구가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필리핀은 개척시대의 서부와는 달랐다. 미국 정치인과 대중 다수는 이질적인 인종이 미국의 일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는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한 일부 필리핀인의 좌절과 분노를 야기했다. 독립을 열망하는 점령 지역 주민들의 저항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양된 반제국주의 기운도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설명은 기술과 관련이 있다. 플라스틱과 기타 합성소재는 열대작물로 만들던 기존 제품을 인공물로 대체하도록 했다. 교통과 통신 기술의 발달로 미국의 상품과 아이디어, 인력은 손쉽게 외국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자국에서 만든 대다수 물건과 관행을 표준화해 미국의 영향력은 물리적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세계화에는 굳이 식민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필리핀인들은 19세기 말 압제자 스페인을 몰아내는 전쟁의 동맹이라고 생각한 미국이 점령군으로 돌변한 데 당황해야 했고 태평양전쟁 때는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은 미군이 일본군 공세가 시작되자 미련 없이 도망치자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미-스페인 전쟁으로 미국에 복속된 후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생각한 푸에르토리코인들 역시 자연재해와 가난, 풍토병에 허덕이는 자신들에게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인종적 멸시로 일관한 미국인들에게 치를 떤 것은 마찬가지였다.

필리핀으로 귀환하는 더글러스 맥아더
필리핀으로 귀환하는 더글러스 맥아더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군에 쫓겨 필리핀에서 철수한 맥아더는 1944년 10월 미군의 필리핀 탈환으로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필리핀인은 미군이 형세가 불리해지자 주저 없이 자신들을 버린 데 대해 깊은 좌절을 느꼈다. [글항아리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을 제국이라고 부르건 그러지 않건 간에 팽창하는 미국의 발걸음은 세계 각국, 특히 훗날 제삼세계라고 불리게 되는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들의 역사 전개와 미국을 두고 동지인지 적인지 혼란스러워하던 이들 지역 민중의 삶에 짙은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도 그 유산은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서 길게 언급되지 않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김현정 옮김. 720쪽. 3만5천원.

미국은 어떻게 '제국'의 정체를 감출 수 있었나 - 4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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