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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전범은 어떻게 뉘우치고 새사람으로 거듭났나

송고시간2020-01-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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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 김효순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발간

(서울 = 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일제 침략군의 만행을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만들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일본 도쿄 특파원과 편집국장 등을 지낸 언론인 출신 김효순 '포럼 진실과 정의' 대표의 책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서해문집)가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난 후 중국 푸순(撫順)전범관리소에 수감된 일본군 전범들이 어떻게 죄과를 뉘우치고 전쟁 반대와 평화 추구를 외치는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됐는지 쫓아간다.

종전 후 옛 만주국과 중국 등에서 소련군에 체포됐던 1천명에 가까운 일본군 전범들은 시베리아 등지를 전전하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중국에 넘겨져 푸순전범관리소에 수감된다. 뼛속까지 황국신민 정신과 군국주의 교육에 물들었던 이들은 침략 정책의 충실한 입안자이자 집행자였다.

수감 초기만 해도 이들은 "군벌의 폭정으로 도탄에 빠진 중국 인민을 구원하려 했던 우리를 가둬두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다", "5족 협화의 낙원을 실현하기 위해 만주국을 세웠다"와 같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전범관리소 지도원들은 이들을 인간적으로 대했다. 입감 첫날부터 전범들에게 흰 빵과 쌀밥을 줬고 정월에 떡과 과자를 배급해 주기도 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중국 인민들의 정성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중국인 직원들이 하루에 수수밥을 한두 끼 먹을 정도로 어려웠던 때이니 '정성'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었다.

전범관리소 지도원들은 전범들에게 중국 인민들에게 저지른 범죄 행위를 뉘우치라거나 죄상을 자백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처음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세뇌 작전'이라고 경계하던 일본인 전범들도 점차 지도원들의 진정성을 깨닫고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이즈미 다케가즈(泉毅一)는 일본 육군 34군 보도반장으로 종전을 맞았다 전범으로 체포됐다. 그에게는 수습사관 시절 중대장으로부터 붙잡혀온 중국 농민 여섯명을 칼로 베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도저히 그럴 수 없어 주저하니까 부하인 하사관이 대신했던 일이 있었고 이 일은 내내 무거운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고민 끝에 이즈미가 지도원인 장멍스에게 이 일을 고백하면서 "직접 손을 댄 것은 아니지만 부하가 베는 것을 막지 못했다. 중대한 책임을 느낀다"고 하자 장멍스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것은 좋은 것이다. 정말로 당신의 양심을 위해 기뻐한다"고 말했다. '기자의 감각'으로 보기에 지도원의 태도는 자백하게 했다는 기쁨이 아니었다. 정말로 마음속에 파고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즈미를 비롯한 많은 전범이 푸순에 있는 동안 새사람이 됐다. 그리고 강연과 저술 등을 통해 일본의 전쟁 중 죄상을 폭로하고 전쟁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활동을 자발적으로 이어갔다. 그리고 이들 중 다수는 '중국귀환자연락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자신의 활동을 조직화했다. 이 모임은 고령이 된 회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유지가 어려워지자 2002년 해체됐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시민단체, 학자, 언론인, 시민 등이 참여한 '푸순의 기적을 이어가는 모임'이 이어받고 있다.

452쪽. 1만9천500원.

일제 전범은 어떻게 뉘우치고 새사람으로 거듭났나 - 1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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