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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뒷맛] 전염병에 '좋다'는 음식의 역사

송고시간2020-02-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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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참기름은 맛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죽이지는 않는다.'

'참기름을 먹거나 바르는 것이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내놓은 답변이 재치 있고도 명료하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유행에서도 어김없이 특정 음식이 병의 예방이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속설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카카오톡 메신저 등을 통해 퍼진 '마늘을 7∼8통 구해서 칼등으로 두드려 차 끓이듯 끓여서 하루에 2번, 7일만 마시면 검푸른 가래 토하던 사람도 다 낫더라'라는 신종코로나 '묘약'에 관한 이야기가 대표적 사례.

육군은 지난달 말 일부 부대의 '생활관과 행정반 등에 양파를 비치하라'는 지침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시행하며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을 받게 되자 "코로나 예방 차원이 아니고 감기 예방을 위해 권장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사스 영향으로 베이징에 김치 열풍(2003년 6월22일)
사스 영향으로 베이징에 김치 열풍(2003년 6월22일)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염병이 돌 때마다 치료나 예방법으로 언급되는 음식에 김치를 빼놓을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달 초 한국에서는 김치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인플루엔자, 일반 독감 등의 치료법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2002년 전 세계에서 800명가량 사망자를 낸 사스 창궐 당시 한국에서 사망자가 없었던 이유가 마늘이 많이 들어간 김치를 먹기 때문이라는 설이 퍼지면서 중국이나 홍콩 주민들이 김치를 사스 예방책으로 구매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집단 감염 사태에서 김치를 먹는 한국의 방어막도 뚫리면서 이 속설은 힘을 잃게 됐다.

1411년 토겐부르크 성서에 그려진 흑사병 환자
1411년 토겐부르크 성서에 그려진 흑사병 환자

[위키피디아 캡처]

전염병 공포에 시달릴 때 무언가를 먹어서 병을 이겨보겠다는 마음은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지금보다 더했을 터.

중세 유럽에서 적게는 7천500만명, 많게는 2억명의 목숨을 빼앗은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는 썩은 당밀(사탕수수 등에서 당을 정제하고 남은 끈적한 액체)을 치료 약으로 믿고 먹었다.

또 음식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에메랄드 가루나 사람의 소변을 흑사병 치료제로 믿고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려 14만명이 숨져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준 전염병인 1918년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에도 특정 음식이 치료와 예방에 좋다는 속설이 나돌았다.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기획위원회가 펴낸 '3.1운동 100년'이 인용한 '조선휘보' 1919년 3월 기사에 따르면 '명태 3마리, 파 10개를 달여서 복용하면 유행성 감모(스페인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당시의 대표적 '미신요법'이었다.

또다른 치료법으로 '마른 콩잎, 얇게 저민 생강 7개, 죽엽 7매, 파 7개를 목통에 달여 복용하면 병이 치유된다', '꿩의 오장육부를 꺼낸 후에 검은콩 및 소토(燒土·논밭의 겉흙)를 채워 통째로 삶아 그 즙을 복용하면 치유된다' 등도 널리 믿었던 것으로 소개됐다.

콩잎은 물론 논밭의 흙까지 전염병 예방 또는 치료제로 생각한 것은 실소를 자아낸다. 꿩, 명태 같은 보양식 재료나 생강, 파처럼 감기에 걸렸을 때 차나 음식으로 해 먹는 식자재가 포함된 것에서 당시 사람들이 나름의 방법으로 역병을 이겨내려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일제강점기 군산도립병원 모습
일제강점기 군산도립병원 모습

[군산시 제공]

그러나 일제는 이를 미신요법이라고 부르며 일축했다.

'3.1운동 100년'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이 감기에 걸리면 소화가 잘되라고 채식 위주로 먹는 것에 대해 "육식은 죽음의 원인이 된다고 칭하여 전부 이를 폐하고 채식만을 섭취하기 때문에 영양 불량에 빠져 병세를 증장(악화)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제라고 해서 과학적 지식만으로 무장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매일신보 1921년 1월21일 자에 '유행성 감모는 음주자에는 불가침'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서 총독부 의원장 시가 박사는 "술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스페인 독감에) 별로 걸리지 않는 모양인데 이것은 추울 때 술을 먹으면 열이 발하여 체온을 보존하는 다소간 효과를 얻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결국 당시 의료 지식이 지닌 한계로 전문가에게나 민간에서나 이러저러한 속설이 나돌았던 것인데, "일제가 환자 발생이나 사망률에 대해 조선인들의 문제로 책임을 전가하자 방역당국에 대한 불신 및 불만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3.1운동 100년'은 설명했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 캡처]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 캡처]

해방 뒤 1957년과 1968년 2차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를 강타한 홍콩 독감 때는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타서 먹는 것이 특효 음식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번 신종코로나 예방에도 김치나 마늘이 효험이 있다는 정보가 퍼지자 질병관리본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홈페이지 '사실은 이렇습니다' 코너를 통해 "마늘, 김치 등이 좋은 음식인 것은 맞지만 감염 예방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고 못 박았다.

또 중국 상하이(上海)시가 공문으로 마늘 섭취를 권했다는 온라인상 주장에 대해 "의약품 공급을 안정적으로 하라는 내용으로 마늘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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