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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탁의 탁견] 사스의 추억과 '做人做事要認眞'

송고시간2020-02-1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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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저녁 텅빈 선양 시타제
지난 4일 저녁 텅빈 선양 시타제

(선양=연합뉴스) 차병섭 특파원 = 지난 4일 오후 7시(현지시간)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시타제(西塔街). 한창 붐빌 시간이지만 거리가 텅 비어있다. 2020.2.7 bscha@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태를 보면서 17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보고 느낀 '사스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2003년 2월 연합뉴스 초대 상하이 특파원으로 부임하자마자 터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감염환자가 속출했고, 중국 위생 당국은 총력 대응에 나섰습니다.

특히 욱일승천하는 중국 경제의 발전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더욱 기세를 더하고 있던 차여서 중국의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게다가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을 유치했던 터라 사스의 충격은 더욱 중국을 힘들게 했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시, 중국을 대표하는 두 도시입니다.

수도 베이징은 당시 극도의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와중에 그해 3월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중 3자 회담(북핵) 취재차 현지에서 목도한 베이징의 거리는 무서웠습니다. 베이징 시내 곳곳이 차단돼있었고, 거리는 텅텅 비다시피 했습니다. 상점도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베이징에서 만난 시민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베이징 외곽에서 수백명이 사스에 죽었다더라"는 말들을 하곤 했습니다.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지요.

그런데 상하이는 달랐습니다. 중국의 경제수도라는 명칭에 걸맞게 세련된 거리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사스 감염자가 물론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우 적었습니다. 시민들의 일상생활도 별로 지장이 없었습니다. 지옥 같은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 공항에 도착한 외국인 특파원에게도 '철저한 검진'을 하긴 했지만, 별도로 격리하지 않았습니다.

상하이가 사스에 뚫리느냐 여부는 중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상하이 주재 외국 특파원들은 상하이 사스 상황을 자세하게 전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상하이시와 인근 장쑤(江蘇), 저장(浙江)성 등 이른바 상하이권은 국민총생산(GNP)이나 무역량 등 경제적 비중에서 중국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돈의 중심'입니다.

그때 상하이시는 위생국을 중심으로 상하이 지역 사스 관리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당시 펑징(彭靖) 상하이시 위생국 부국장이 기자들의 취재대상이었는데, 하루 한차례의 공식 브리핑 외에도 연락을 할 때마다 사스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곤 했습니다.

상하이 시민들도 대부분 시 당국의 '투명한 발표'를 믿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전역에는 한국인들이 대거 살고 있었지만, 사스 감염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은 발효음식인 김치를 먹어서 사스에 걸리지 않나 보다"는 말을 했고, 실제 중국에서는 때아닌 '김치 특수'가 일기도 했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시의 매우 다른 풍경을 보면서 공포를 관리하는 주체의 신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느꼈습니다.

당시 '상하이 사수 작전'을 이끈 이는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당서기와 한정(韓正) 상하이시 당 부서기 겸 시장이었습니다. 천량위는 이른바 '상하이방'의 황태자로 차기 중국 지도자로 유력했던 인물이었지요.

지금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은 당시에는 상하이 인근의 저장성 당서기로 일했습니다. 그때 대부분 상하이 외신기자들은 시진핑보다는 천량위를 더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천량위는 2006년 말 온갖 비리 사건에 연루돼 허무하게 실각하고 말았습니다. 상하이 인근에서 은인자중하던 시진핑이 권력을 장악해 혁명 5세대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는 '중국의 부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진핑에게 '우한 폐렴'으로도 불리는 신종코로나 사태는 그 시절 사스처럼 운명적인 과제로 등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천량위와 시진핑에 얽힌 얘기는 무궁무진하지만, 오늘은 더는 진도를 나가지 않겠습니다.

대신 천량위와 함께 사스 방어작전을 지휘했던 한정 시장 얘기를 할까 합니다. 중국 공산정부 수립 이후 최연소(49세) 상하이 시장으로 등극한 한정 시장이 그해 9월 24일 외신기자들과 회견을 했습니다.

4월 봄의 극성기를 지나 여름까지 이어진 사스 공포가 사라지고 상하이에 평온이 찾아오던 때였습니다. 앞서 한 시장은 사스 행정을 투명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외국 기자들에게 평화의 때가 오면 `자리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이를 지킨 겁니다.

그때 한 시장이 밝힌 좌우명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하는 데 있어 최선을 다해야한다(做人做事要認眞)'는 것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오늘날 상하이의 발전을 이끈 것은 중앙정부의 지도방침을 상하이 시 정부 관계자 모두가 성심껏 이행한 결과라고 겸양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는 2020년까지 상하이를 국제경제.금융.무역.항공운수 등 4대 부문의 중심으로 건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자,

올해가 바로 2020년입니다. 한정은 '천량위 숙청'의 여파를 견뎌내고 상하이 당서기를 거쳐 2017년 시진핑 주석과 함께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한 시장의 말대로 상하이, 나아가 중국의 발전상은 그야말로 눈부십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봄을 거쳐 여름까지 이어질 신종 코로나 사태가 중국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세계최강 미국과 자웅을 겨루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중국의 미래는 또 어찌 될까요. 한반도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요?

17년 만에 '사스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많은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이글은 프리미엄 북한뉴스레터 '한반도&' 에디터 칼럼입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이메일 신청'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3679 해주세요)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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