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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재판개입도 무죄…법원 '제식구 감싸기' 비난 감당할 수 있겠나

송고시간2020-02-1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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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법원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연이어 세 번째 무죄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 선고된 사법적폐 관련사건 모두를 무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사법농단의 중핵이라 할 수 있는 '재판 개입'에 관한 것으로, 앞서 무죄가 선고된 유해용 전 판사나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사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겁고 본질적인 사안이다. 결론을 압축하면 '재판에 개입해도 무죄'라는 이번 판결로 사법농단 사태에 법원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이긴 하지만 직권남용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법농단 수사 결과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나머지 사건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와 '이현령비현령' 식 법리 구성으로 판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가 더욱 커졌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던 2015년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당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사건 재판장에게 '관련 보도가 허위라는 중간 판단을 내려달라'거나 '명예훼손은 인정되지만 비방 목적이 없어 부득이 무죄를 선고한다', '선고 말미에 피고인을 질책해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실제로 담당 재판부의 법리 구성이 바뀌었고, 재판장은 선고 때 가토 전 지국장을 3시간 넘게 피고인석에 세워둔 채 질책했다. 이를 두고 법원은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절차 진행에 간섭해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면서도 죄형법정주의까지 언급하며 죄는 안 된다고 봤다. 형사수석부장을 포함한 사법행정권자는 일선 재판부의 재판업무에 관해서는 직무감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이런 형식논리는 제왕적 권한을 지닌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를 정점으로 수직구조를 이루는 법원의 위계적 질서와 현실에 눈감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는 것이지 '재판 개입 권한'이라는 게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 논리대로라면 어떤 재판 개입도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또 임 부장판사 지시대로 재판 절차가 바뀌고 판결 내용이 수정됐는데도 '의무 없는 일'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부정한 것도 재판장 중심의 사법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다른 사법농단 재판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도 임 부장판사와 마찬가지로 재판에 개입할 직무권한이 없다고 항변해왔기 때문이다. 법원은 '재판 독립을 침해해놓고 재판은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이다'는 모순된 주장을 인정하는 일을 되풀이해선 곤란하다. 법원은 이미 사법농단 검찰 수사 과정에서 유해용 전 판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여러 차례 기각해 결과적으로 관련 자료를 파기·삭제할 시간을 벌어주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파기환송 하면서 범죄성립 요건을 두고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 사법농단 재판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낳은 것 또한 사실이다.

사법농단과 관련한 잇단 무죄 판결은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개연성이 있다. 검찰 수사가 마무리될 때 탄핵과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채 일부 판사만 기소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실제로 있었다. 재판 개입을 비롯한 사법농단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는 위헌적 사안이어서 형사처벌 외에도 탄핵과 징계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사법농단 사태는 사상 초유의 일이어서 현행 실정법을 토대로 한 형사처벌은 연쇄 무죄판결이 쏟아진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사법개혁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 '김명수 대법원'은 사법농단 판결에 문제가 없는지 곱씹어 보고 사실상 흐지부지된 판사들 징계 문제도 전면 재검토해 제대로 처리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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