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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80세 불편한 몸에도 꿋꿋하게 봉사…옥천 '뜨개질 할머니'

송고시간2020-02-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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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손뜨개 작품 5천여 점 기부한 석순자씨…郡 홍보 물품으로 톡톡히 역할

"찾는 사람 있으면 힘닿는 데까지 계속할 것, 무엇인가 해냈다는 기쁨 더 커"

(옥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남을 돕는다는 기쁨보다 내 일을 해냈다는 만족감이 더 커요. 그러니 나 스스로 감사하죠"

[촬영 전창해 기자]

[촬영 전창해 기자]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서대2리에 사는 석순자 할머니는 80세의 고령에다 다리마저 불편해 온종일 침대 신세를 져야 한다.

하지만 침대에 걸터앉은 석 할머니의 양손은 연신 실과 바늘이 오가며 쉴 새가 없었다.

지난 21일 석 할머니를 만난 지 한 시간 남짓. 어느새 알록달록한 수제 수세미 하나가 완성됐다.

"뜨개질하면 시간이 잘 가고 아픈 것도 잊어. 질리지 않는단 말이야"

뜨개질 얘기에 흥이 난 석 할머니는 불쑥 커다란 종이가방을 꺼내 보였다. 잘 포장된 '뜨개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수세미부터 아기 모자, 목도리까지 당장 가게에 가져다 팔아도 될 법한 수준급 작품들이다.

작품 자랑도 잠시. 석 할머니는 "벌써 가져갈 때가 됐구먼"이라고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

석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에도 자원봉사의 끈을 놓지 않고 이런 뜨개 작품으로 사랑 나눔을 실천하는 '봉사왕'이다.

8년 전 양쪽 무릎관절 수술을 한 이후 몸이 불편해 오랫동안 해오던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석 할머니는 대신 집에 앉아서도 할 수 있는 뜨개질을 선택했다.

하루 9시간 이상 틈나는 대로 뜨개질을 했다. 한 달이면 250∼300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촬영 전창해 기자]

[촬영 전창해 기자]

이렇게 모인 작품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와 노인장애인복지관, 노인요양병원에 기부하거나 주변 지인에게 선물했다.

4년 전부터는 옥천읍행정복지센터와 연을 맺어 대부분을 이곳에 무료 후원하고 있다.

작품이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석 할머니가 손수 포장까지 해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건다.

그러면 작품을 받으러 맞춤형복지팀 직원이 할머니 집에 들른다. 매달 두 차례 반복되는 일상이다.

행정복지센터는 뜨게 작품에 '거동불편으로 누워서 생활하시는 석순자 할머님께서 손수 만들어 후원해주신 작품입니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여 저소득 가정, 경로당 등에 나눠주는 등 지역 홍보 물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호응은 기대 이상이다.

주기적으로 석 할머니의 작품을 찾는 마니아층이 생기고, 감사의 말을 꼭 전해달라는 당부도 줄을 잇는다.

김윤주 옥천읍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은 "석 할머니의 마음은 돈 주고도 못 산다. 행사가 있을 때면 어떻게 알고 더 많이 뜨개질하신다"며 "이제 할머니에게 연락이 안 오면 어디 편찮으신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가 됐다"고 감사해했다.

[촬영 전창해 기자]

[촬영 전창해 기자]

석 할머니의 봉사 뒤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다.

인터뷰 내내 곁을 지키고 서 있던 남편 박무남(79) 할아버지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해 사흘 간격으로 실과 포장지를 사러 간다는 박 할아버지는 "실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바꾸러 가야 하는 등 여간 귀찮은 게 아니야"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10남매 중 첫째인 나한테 시집와 홀시아버지 극진히 모시고, 시동생 아홉에 아들딸 셋까지 훌륭히 키워낸 고마운 사람"이라며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도와줘야지"라고 속마음을 전했다.

지난 8년간 석 할머니가 기부한 작품은 어림잡아 5천여 점에 이른다.

월 8만원가량 드는 실값 등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건강이 되는 한 뜨개질을 멈출 생각이 없다는 게 석 할머니 말이다.

석 할머니는 "처음에는 몸도 아프면서 이런 걸 왜 하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이걸 받고 기분 좋아하고, 잘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기운이 절로 나더라"며 웃었다.

이어 "나보다 더 큰 봉사를 하는 사람도 많고 거기에 비하면 하찮은 일일 수도 있지만, 내 작품을 찾는 이가 있는 한 힘닿는 데까지 뜨개질을 계속할 것"이라며 "아프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내고 있다는 기쁨을 계속 느끼고 싶다"고 덧붙였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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