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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제대로 먹고 있는가

송고시간2020-02-2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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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에 대한 생각' 번역 출간

(서울 = 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세계는 유례없이 부유해졌고 대부분의 나라와 지역에서 기근은 사라졌지만, 세계인의 식탁은 지방과 설탕, 소금, 싸구려 기름이 범벅이 된 '나쁜 음식들'에 점령됐다. 전 세계 근로자들이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은 확연히 줄어들어 '자유시간'이 늘었지만, 요리와 식사에 들일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고 간편식과 즉석식품에 대한 의존은 갈수록 커진다. 그 결과는 비만과 각종 성인병의 만연, 가족·지인들과 함께 하는 식사와 요리하는 즐거움의 실종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이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정크푸드와 비만
정크푸드와 비만

설탕과 나트륨, 지방이 과다 함유된 정크 푸드는 비만과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 [연합뉴스 자료 그래픽]

영국의 저명한 요리 전문 저널리스트 비 윌슨이 쓴 '식사에 대한 생각'(원제 The Way We Eat Now·어크로스)은 우리 식문화의 역사와 현주소에서 문제점과 대안까지를 꼼꼼히 살핀다. 저자는 케임브리지대 박사 출신으로 '포크를 생각하다', '식습관의 인문학' 등을 썼으며 '가디언'과 '월스트리트저널' 등 매체에 음식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그는 미국, 영국에서 한국, 중국, 일본, 아이슬란드, 콜롬비아, 나이지리아에 이르는 세계 곳곳 식문화 현장을 탐방하고 현직 요리사와 영양사, 식품업계 관계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주요 국가와 국제기구의 식생활 통계, 연구 보고서 등을 검토했다. 책 중간중간에 주부로서 자신의 경험도 기술한다.

저자가 인용한 이론에 따르면 식생활을 기준으로 인간의 역사는 4단계 발전 과정을 거쳐 왔다. 1단계 수렵·채집의 시대, 2단계 농경 시대에 이은 3단계는 윤작과 비료 등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더 다채롭고 풍성한 식단을 차리는 것이 가능했던 '기근 감퇴' 시기다. 더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게 되면서 괴혈병과 각기병 같은 결핍성 질환 대부분이 전보다 줄었고 전분성 곡물은 덜 먹는 대신 동물성 단백질과 함께 다양한 채소를 더 많이 섭취하게 됐다. 재료를 말리거나 절이는 등 보관 방법이 등장하면서 요리 또한 훨씬 다양해졌다. 유럽의 경우 몇백 년 전에 이 단계가 시작됐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금 이 단계를 통과하고 있다.

4단계는 대부분의 국가가 위치한 단계다. 식품 가공과 마케팅 분야가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사람들은 지방과 육류, 설탕은 더 먹고 섬유질은 훨씬 덜 먹기 시작한다. 결핍성 질환이 줄어들고 현대 의학의 발전과 함께 기대수명은 최고치를 찍지만, 식생활과 관련한 만성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 또한 이례적으로 증가한다. 서구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단계에 접어들었고, 그 외 저소득 국가와 중간 소득 국가는 지금 빠른 속도로 이 단계로 전이한다.

이 같은 '영양 전이'는 단순히 공급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브라질과 수단, 영국, 헝가리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전혀 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의 욕망을 바꿈으로써 모두가 같은 종류의 음식에 끌리게 하고 전 세계 식단은 균일해졌다. 바나나를 예로 들면 과거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주 희귀한 음식으로 여겨지던 것이 지금은 세계 구석구석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것도 대부분 거대 농업기업이 생산한 '캐빈디시' 바나나로 품종조차 똑같다.

식사량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늘어난 가운데 설탕과 쌀 섭취량이 특히 증가했고 식단에 설탕과 기름, 육류가 많아졌다. 4단계의 섬뜩한 특징 중 하나는 엄청난 속도다.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고 2단계에서 3단계는 몇 세기로 전이 기간이 줄어들었다. 3단계에서 4단계로 가는 데 걸린 시간은 10년이 채 안 걸린 경우도 있다. 급속한 영양 전이가 일어난 국가 중 대표 격인 멕시코에서 과체중 또는 비만인 사람 비율은 1988년에서 1998년 사이 78%나 증가했고 2006년에는 멕시코 인구 8%가 제2형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저자는 4단계로 향하는 영양 전이의 '커브'를 꺾는 것, 즉 건강한 식사 패턴 쪽으로 변화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 해답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빛의 속도로' 4단계에 진입했으나 1996년 중국보다 1인당 소득이 14배나 높은데도 중국인보다 지방을 덜 먹는 등 한국인들의 지방 섭취량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또 1969년에서 1995년 사이 채소 섭취량은 조금이나마 늘었다. 저자는 서구에서 채소를 단순히 몸에 좋은 것으로만 여기는 것과 달리 한국인들은 채소를 '맛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중요하게 본다. 한국 시골에서는 각종 나물과 시금치 등 300여 가지가 넘는 채소를 먹는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 채소 요리의 '최고봉'인 김치는 '곁들여 먹는 음식'이 아니라 '주식'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한국 전통 시장의 산나물
한국 전통 시장의 산나물

한국의 채소 섭취량은 1969년 하루 평균 271g에서 1995년 286g으로 소폭 늘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자는 우리가 '나쁜 음식'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던 사회·경제적 배경과 배후에서 이를 부추기는 거대 식품기업, 정체가 의심스러운 건강식품을 선전하는 허풍쟁이들, 검증되지 않은 섭식의 비법,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먹방'이 초래하는 부작용 등 우리 식문화의 자화상을 세밀히 그려가면서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설탕과 소금, 육류, 즉석식품, 패스트푸드점의 정크 푸드 등의 소비를 줄이고 채소 섭취량을 늘리며 가능한 한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재료를 집에서 정성껏 요리해 가족과 함께 여유 있게 식사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최선의 대안이다.

그러나 이것이 많은 가족과 개인에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도 저자는 잘 안다. 그래서 요리에 대한 관점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사람을 위해서든 요리는 매일 하는 다짐과 사랑의 표현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농업과 식품 시장 규정, 교육, 요리 수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외부'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렇게 사람들이 탄산음료 대신 물을 선택하고 채소 소비를 늘리고 건강에 해로운 간식의 섭취를 줄인다면 영양 전이의 5단계로 들어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김하현 옮김. 516쪽. 1만7천800원.

우리는 지금 제대로 먹고 있는가 - 3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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