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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14년 한결같이 '사랑의 열매' 저금통 채우는 가족봉사단

송고시간2020-02-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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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준·연재·혁재 삼남매, 어머니와 매년 공동모금회에 성금 전달

장애인복지시설 찾아 봉사…"시설서 인연 맺은 희주, 가장 큰 선물"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소소한 일인걸요. 대단해 보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누군가는 하는 일인데 꾸준히 해왔을 뿐이에요."

사랑의열매 저금통과 성금을 기부하는 초롱이 가족 봉사단
사랑의열매 저금통과 성금을 기부하는 초롱이 가족 봉사단

[촬영 백나용]

초롱이 가족 봉사단으로 활동하는 양혁준(24)·양연재(22)·양혁재(19) 삼남매와 어머니 김미순(56)씨는 새해 초가 되면 동전으로 배가 불룩해진 저금통을 들고 제주사랑복지공동모금회를 찾는다.

이들이 한 해 동안 저금통에 모은 성금을 전달한 지도 햇수로 벌써 14년째다.

삼남매는 사회복지 공무원인 어머니 김씨와 함께 참가한 2007년 공무원 송년의 밤 행사에서 가족 수화공연으로 특별상과 더불어 3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뜻밖의 상금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공동모금회를 찾은 게 기부의 시작이 됐다.

이때 사랑의 열매 저금통을 받게 됐고, 매년 저금통에 용돈을 모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36만1천550원이 담긴 저금통 4개를 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김씨와 삼남매가 지난 1년간 호주머니 속 동전이나 세뱃돈 등을 아껴 모은 돈이다. 성금을 내놓은 이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새 저금통이 쥐어졌다.

이들은 기부뿐만 아니라 10년 넘게 꾸준히 봉사활동도 한다.

새로운 사랑의저금통 받는 초롱이 가족 봉사단
새로운 사랑의저금통 받는 초롱이 가족 봉사단

[촬영 백나용]

어머니 김씨가 제주시 애월읍 소재 장애인복지시설인 창암재활원의 운영위원을 맡으면서 삼남매도 자연스럽게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첫째 혁준씨는 초등학교 3학년, 둘째와 셋째는 8살과 5살이었다.

김씨는 "맞벌이를 하는 데다 업무도 바쁜 탓에 아들딸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 나들이 겸 시설을 같이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삼남매와 함께하는 봉사가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낯가림이 심했던 막내는 시설에 적응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는 1년이 지나고 나서야 형과 누나를 도와 청소 등에 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김씨는 "어릴 적 막내가 워낙 소심해서 걱정도 됐지만,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1년을 계속 데려갔다"며 "이제는 봉사활동을 하러 갈 때면 막내가 가장 앞장서서 갈 만큼 훌쩍 컸다"고 웃어 보였다.

이들은 오전 10시 시설에 도착해 바닥부터 쓸고 닦는다. 또 입소자들이 사용하는 휠체어 정비 등도 돕는다.

목욕이 끝난 입소자의 머리카락을 말려주고, 옷을 입혀주는 역할도 한다.

점심때는 식사 보조원으로 변신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입소자 10명 중 8명은 스스로 식사를 하기 힘든 중증환자여서 삼남매의 도움이 큰 힘이 된다.

인터뷰 도중 기자가 "대단하다"고 치켜세우자 삼남매는 "누군가는 매일 하는 일을 잠시 도울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오히려 본인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큰 선물을 받는다며 시설 입소자인 희주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했다.

희주와 초롱이 가족 봉사단
희주와 초롱이 가족 봉사단

[김미순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장애를 가진 희주는 집을 떠나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삼남매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희주와 바깥나들이를 한다.

5년 전부터는 매달 두 차례씩 가정학습 체험의 날을 정해 1박2일을 함께 보내고 있다.

토요일 오전 희주를 데리고 나와 함께 야외활동을 하고 식사를 한 뒤 집에 가서 씻고 자고, 다음날 시설로 복귀하는 일정이다.

거동이 불편한 희주를 보살피는 게 만만찮은 일이지만 가족 모두는 희주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몇 년 전에는 웨딩숍에서 드레스와 양복을 협찬받아 희주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진은 희주네 집에도 전달돼 두 집에 나란히 걸렸다.

삼남매는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만 보더라도 우리가 오히려 얻은 게 많다고 강조했다.

또 오랫동안 봉사를 이어온 데 대해서도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삼남매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도 소소하고, 봉사활동이나 기부 내용도 들여다보면 보잘 것 없다"며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 뿐이지, 이미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에 작은 보탬을 더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된 봉사 분위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어머니 김씨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면서 사회복지시설마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우리 가족도 봉사활동에 제약이 생겨 현재는 희주조차 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서 빨리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 돼 모두가 평소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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