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코로나19 빼닮은 조선시대 돌림병…"살아갈 힘은 돕는 데 있다"

송고시간2020-03-05 10:05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본원적 공포 vs 만들어진 공포'…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3월호에 담아

격리·추방에 공포와 소외…중국 독감 조선에 퍼져 10명 중 2명이 숨질 정도

감염병으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와 넋을 잃은 아들(그림:정용연)[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감염병으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와 넋을 잃은 아들(그림:정용연)[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무기력, 무서움…."

한국국학진흥원이 '본원적 공포 vs 만들어진 공포'란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3월호를 펴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날마다 급증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공포'를 주제로 삼았다.

선현들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에서 전염병(감염병)으로 일어나는 갖가지 공포를 살피고 생각할 거리를 공유하려고 기획했다고 한다.

5일 웹진 담 3월호에 따르면 본원적 공포가 전염병 자체가 갖는 위험성이라면 만들어진 공포는 그것에서 파생하는 것이다.

치료에 차별이나, 병 걸린 자에 차별, 전염 가능성과 두려움으로 기침하는 자에게 경계 등 비이성적인 공포가 확산한다.

조선 시대 선현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1616년 7월 17일, '조성당일기' 저자인 김택룡 집으로 한 발광한 사내가 뛰어들어 난동을 부린다.

그는 정희생이라는 양반으로 얼마 전 집안에 감염병이 발생하자 온 마을 사람에게 외면을 받게 되었다.

서럽고 억울한 마음에 이와 같은 난동을 벌였다.

김택룡이 겨우 달래 돌려보냈으나 다음날에도 찾아와 문 앞을 서성이다 돌아갔다.

그런데 바로 이날 밤 정희생의 어머니가 밤나무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는다.

감염병 치료 수준이 현저히 낮은 조선 시대 마을에서 돌림병이 돌 때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환자를 멀리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김택룡은 이런 상황에서 마을에 내쳐진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던 안타까운 사연을 자세히 기록했다.

이웃 사람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겪은 격리, 공동체가 추방한 이들이 겪은 공포와 소외감은 지금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다고 볼 수 있다.

김택룡은 이 일을 몹시도 참담하게 여겨 목숨을 끊은 정희생 어머니 장례를 일가 사람과 함께 치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겨내기 어려웠으나 그래도 계속 살아갈 힘은 서로를 돕는 데 있다는 훈훈한 기록을 남겼다.

감염병에 공포와 경계심은 고금이 마찬가지나 실제로 대처하는 자세는 달랐다.

검역과 치유 수단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감염병 피해는 훨씬 컸다.

더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후기 사회는 감염병과 기근 연속이었다.

다양한 기록에 조선이 겪은 감염병 이야기가 나온다.

이 가운데 코로나19와 같이 중국에서 시작한 감염병이 이 땅으로 퍼진 사례가 조선 후기 학자 무명자(無名子) 윤기(1741~1826)가 쓴 한시에 들어 있다.

이를 보면 "옛날에도 그랬다지만 올해처럼 심한 해는 없었네. 염병도 아니고 마마도 아닌 것이 온 세상 끝까지 덮쳤어라.

돌림감기라 억지로 이름 붙였지만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네. 열흘 만에 천하에 퍼져 풍우 같은 기세로 몰아쳤네. (중략)

듣자니 중국에서 시작하여 처음엔 더 많이 죽었다지. 여파가 조선에 미쳐 곳곳마다 맹위를 떨쳤네."

윤기가 시로 남긴 1798년 겨울에 크게 유행한 독감은 코로나19와 그 상황이 매우 닮았다.

중국에서부터 독감이 유행했는데 이 때문에 청나라 황제 건륭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날 정도였다.

조선으로 퍼진 독감은 열흘 만에 서울로 번져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치사율은 20%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조선 시대 기록물에서 찾을 수 있는 당시 재난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의료나 방역 수준에서 열악했으나 이 가운데 역병이 도는 고을을 돌보려 애쓴 관리가, 사람 도리를 고민한 청년이 있었다.

홀로 남아 환자를 구료(救療)한 여성도 있다.

3월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조경란 연구원은 "조선 시대 감염병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열악한 환경에도 그때 그 사람들이 재난을 이긴 것을 기억하고 계속 살아갈 힘은 서로를 돕는 데 있음을 가슴에 품게 된다"고 밝혔다.

kimhj@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