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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향 "'마리 퀴리'는 다투고 울면서 만든 내 새끼 같은 작품"

송고시간2020-03-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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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외유내강형 '마리' 연기…"마스크 쓴 관객들 보면 눈물"

뮤지컬 '마리 퀴리' 주역 김소향
뮤지컬 '마리 퀴리' 주역 김소향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뮤지컬 '마리 퀴리' 주역 김소향이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3.6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이번에 '마리 퀴리' 만들 때 가장 많이 싸운 사람이 저예요. 이전 오류를 다시 범할 수 없었거든요. 수 없는 다툼과 논쟁과 화해와 울음이 섞여서 대본이 나왔죠. 그래서 '마리 퀴리'는 내 새끼 같은 느낌이에요.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게도 지금 극찬을 받고 있어요."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2018년 초연에 이어 올해 다시 마리를 연기하는 김소향은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하는 '마리 퀴리'는 라듐을 발견해 저명한 과학자가 되지만 그 유해성을 알고 고뇌하는 마리와 라듐공장 직공으로 동료들의 죽음을 마주한 뒤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안느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특히 여성이자 이민자로서 억압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두려움에 맞서고 세상과 당당히 마주한 여성 과학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초연에서는 마리가 남편 피에르, 안느 등 모두를 상대로 싸우는 캐릭터였다. 라듐의 유해성을 밝히고 싶어하는 것은 재연 무대와 같지만, 라듐으로 고통받는 안느와 직공들을 외면하는 모습이 특히 이기적으로 보였다고 한다.

"지난번에는 안느와 마리와 대립 관계였는데 이번에는 함께 가는 동료로 나와요. 같이 헤쳐나가고 사회의 벽을 깨부수는 영혼의 단짝이죠. 마리는 유해성을 밝히려고 자신에게 실험하고, 안느는 라듐의 희생자여서 어떻게 보면 같이 죽어가는 거죠. 서로 용기를 북돋워 주고 일으켜주는 여성연대가 무척 감동적이에요."

'여성 원톱 서사 작품 장인' 김소향
'여성 원톱 서사 작품 장인' 김소향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뮤지컬 '마리 퀴리' 주역 김소향이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3.6 mjkang@yna.co.kr

하지만 '여자극'으로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위대한 여성 과학자가 실제로는 수많은 실패와 고통을 겪었고, 그가 잡초처럼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극"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소향의 '마리'는 어떤 캐릭터일까. 그는 "과정이 보이는 마리"라고 했다. 이어 "교사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난 소심하고 부끄럼도 많은 여자가 과학자로서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연약해 보이지만 자기 일에서는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외유내강의 마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여성 원톱 서사 작품 장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작품을 선택하는 김소향만의 기준이 있는지 물었다.

"멋있지 않더라도 극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해요. 공연의 목적을 위해 갈등이 시작되거나 해소되는 부분에서 중요한 캐릭터를 맡고 싶은 거죠. 그렇게 공연해서 크리에이티브 팀한테서 '네가 해줘서 더 잘 만들 수 있었어. 고마워'라는 말을 들으면 배우로서 너무 감동적이고 행복하답니다."

이어 "원톱 작품을 하는 건 가장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대극장, 소극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공연하는 것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 시작할 때 공연계에서 가장 앞에 서서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리를 연기하는 김소향
마리를 연기하는 김소향

[라이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소향은 자신을 '들꽃'이라고 했다. 공주처럼 자라지 않고 불길 속에 뛰어드는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배우 생활 11년째 되던 해에 감행한 미국 유학 얘기를 꺼냈다.

"거울을 보는데 문득 배우로서 미래가 밝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걸어온 길이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저를 보니 신선하지도 않고 너무 뻔한 거예요. 배워야겠다는 마음에 미국으로 공연을 보러 갔죠. 그러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뉴욕 필름 아카데미 광고판에 있는 뮤지컬씨어터를 봤어요. 이듬해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시작했죠."

유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느라 새벽 5시 전에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다. 마리 퀴리가 라듐을 추출하기 위해 4년간 단순 작업을 했듯 1년간 꼬박 방에 처박혀 공부에만 매달렸다. 뮤지컬씨어터 과정이 끝난 후에는 보컬 레슨을 받고 뮤지컬 오디션을 보면서 2년을 보냈다. 언어의 벽에 부딪혀 매번 오디션에 떨어지면서도 계속 도전해 결국 '시스터액트' 아시아 투어에 합격했다.

그는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다. 그래서 폴란드인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 힘들게 싸운 마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 갔다 와서 음악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어릴 때는 무작정 지르기만 했는데 두성과 믹스보이스를 쓰기 시작했다. 클래식한 노래가 많은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래서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김소향은 요즘 매일 울고 감사하며 산다고 했다. "마스크를 쓰고 앉아서 2시간 30분 동안 공연을 보는 관객들을 보면 진짜 눈물이 많이 나요. 진짜 배우 하길 잘했구나. 이런 벅찬 감정을 매일 느끼면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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