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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학교]① 악성 민원에 정신과 진료받는 교사의 넋두리

송고시간2020-05-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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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서 두차례 사표…"늑대 굴에 홀로 남겨진 심정"

우울증에도 휴직 못 해…"약 먹고 버티며 수업"

[※ 편집자 주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방역을 위한 '긴 방학'을 보낸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감염병 우려가 줄어들면 학교는 점차 활기를 되찾겠지만 한편에는 아직도 학교를 불편하게 여기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있습니다. 상위권 대학 진학자 수를 늘리는 것이 학교의 지상 목표가 되면서 수업에서 소외되거나, 해결되지 않는 학교 폭력에 멍든 아이들. 학부모와 학생, '제왕적' 교장 등이 휘두른 폭언에 멍드는 교사들이 그들입니다. 6천268명, 그리고 그보다 많은 6천968명. 각각 명예퇴직과 자퇴라는 이름으로 한해(2018년 기준) 학교를 떠나는 교사와 고교생 수입니다. 굳이 통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학교가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견디기 힘든' 공간이 되었다는 우려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 미래 교육'이라는 가치를 무색게 하는 현실입니다. 연합뉴스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전국 교사 4만9천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이 가능한 학교 만들기 교원 실태조사'를 계기로 다양한 이유로 학교와 멀어진 교사와 학생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6편의 기획 기사를 마련했습니다]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9u5GIKtB7GQ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하명진(44·가명) 교사는 2004년 교사가 된 뒤로 두 번이나 학교를 그만뒀다.

첫 사표는 교사가 된 지 6년째 되던 해에 냈다. 당시 담임을 맡았던 6학년 학급에서 발생한 집단따돌림이 발단이었다. 함께 어울리던 몇몇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회복 불가능한 정도의 갈등은 아니라고 판단한 하 교사는 아이들이 화해하면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그룹의 '리더' 역할을 하던 학생에게 화해를 제안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학생은 편지를 읽고 "잘 알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봉합되는 듯했던 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음날 학생의 엄마가 학교로 찾아왔다. 밑줄이 그어진 하 교사의 편지를 손에 든 학생의 엄마는 자신의 교육관과 인격을 모독했다며 분노를 쏟아냈다.

"악성 민원 홀로 대처 힘들어"
"악성 민원 홀로 대처 힘들어"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하명진(44·가명) 교사가 3월 9일 인천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겪은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 교사는 학부모 폭언과 악성 민원 등에 직면했을 때 학교에서 도움을 받지 못해 힘들었다고 밝혔다. 2020.3.9. ohyes@yna.co.kr

하 교사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학생의 엄마는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매일 전화하고 학교로 찾아오고. 수업이 끝날 때 교실 문 앞에 화난 얼굴로 서 계셨어요. 어머님이 제 앞에서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거의 한 달을 그랬어요. 새벽 6시 반에도 전화가 와요. 너 때문에 한숨도 못 자서 지금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당장 달려오라면서 화를 내셨죠"

그림을 누르면 학부모 민원상황을 설명하는 하명진 교사의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신변 노출을 막기 위해 목소리를 변조했습니다.

학생의 엄마는 소송까지 거론하며 교사를 윽박질렀다고 한다.

"당신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해도 민사소송을 해서 최소한 3년간은 피를 말려줄 수 있다는 말까지 했어요. 그때 제가 완전히 무너져 병이 나더라고요. 심부전증도 왔어요"

그렇게 학부모의 막말과 모욕이 쏟아졌지만, 교사를 보호하는 장치는 없었다. 교사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는 교장과 교감, 학년 담당 부장 교사, 학교를 지도·감독하는 교육청도 있었지만, 막무가내인 학부모를 상대하던 순간 하 교사는 철저히 혼자였다.

너무 괴로워 병가를 내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3일만 병가를 달라고 했는데 교장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할 수 없이 사흘을 무단결근하니 학교에서 뒤늦게 '병가'로 처리해 주더라고요."

하 교사는 이때 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그리고 학생의 엄마는 그때서야 '용서가 안 되지만 아이들은 진심으로 대하는 걸로 알고 용서해 주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학교로 돌아온 하 교사는 그해 남은 기간을 아이들과 비교적 평온하게 지냈지만, 해가 바뀌고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 사표를 냈다. 고통과 공포의 기억이 계속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 교사는 이후 일반 회사에 취업했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어 4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고 한다.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사립초등학교였다.

"학부모 막말에 우울증…병가 신청 거부돼"
"학부모 막말에 우울증…병가 신청 거부돼"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하명진(44·가명) 교사가 3월 9일인천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겪은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하 교사는 학부모 폭언과 악성 민원 등으로 우울증을 얻고 학교에 병가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2020.3.9. ohyes@yna.co.kr

그가 두 번째로 교편을 잡은 학교에서는 동급생간에 학교 폭력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맞았다는 아이는 폭행 피해를 증명하지 못했고, 때렸다는 아이는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피해 학생의 엄마가 학교 폭력위원회(학폭위) 개최를 요구했고 하 교사도 학폭위 개최 계획을 보고했다.

그러나 결재자인 교장은 반대했다. '폭력 없는 학교'라는 학교 이미지를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교장은 하 교사에게 어떻게든 해결해 보라고만 했다고 한다.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교장은 직접 해결하겠다며 수업 도중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을 따로 교장실로 불러 나름의 '조사'를 시작했다. 동시에 학급에 남은 아이들에게는 폭력이 있었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해 학생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학교가 아이들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조사했다는 게 가해 학부모들의 항변이었다.

상황이 악화하자 '조사'를 주도한 교장은 슬그머니 뒤로 빠진 상태였다. 결국 하 교사 혼자 학부모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거듭 사과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아이들을 방치하고 상처를 준 쓰레기'라는 비난만 돌아왔어요. 어느 날은 가해 학생들의 아버지 세 명이 몰려와서 거의 멱살을 잡다시피 했어요.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자, '쓰레기는 수업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면서 제지했어요"

그림을 누르면 학부모 민원상황을 설명하는 하명진 교사의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신변 노출을 막기 위해 목소리를 변조했습니다.

가해 학생이 부모는 등교 시간에 공개적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라는 요구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 넘게 학부모들의 협박과 욕설에 시달리던 그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학교는 병가도 허용하지 않았다. 극심한 우울증을 겪던 그는 당시 '나쁜 생각'도 했다고 한다.

"애들이 잘되기를 바란 건데…. 아무리 사과해도 듣지 않고. 그런 무자비한 공격에 부딪혔을 때, 제도적으로 (교사를) 막아주는 게 아무것도 없고. 학교도 교장도 다 도망가고. 늑대 굴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두려움만 있었어요"

"교사, 제도적 보호 장치 없어"
"교사, 제도적 보호 장치 없어"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하명진(44·가명) 교사가 3월 9일 인천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겪은 고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 교사는 학부모 폭언과 악성 민원 등에 직면했을 때 교사를 제도적으로 보호해줄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20.3.9. ohyes@yna.co.kr

그림을 누르면 보호제도 미비로 겪은 고통을 설명하는 하 교사의 육성이 나옵니다.

※ 신변 노출을 막기 위해 목소리를 변조했습니다.

하 교사는 이런 일들이 사립 초등학교에서만 벌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표를 내고 수도권 임용고시를 통해 인천의 한 공립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공립학교 이직 후에도 홀로 학부모를 상대하고 민원을 처리하는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고 한다. 학부모의 소송 협박, 폭언도 여전히 혼자 감내하고 있다.

그는 "인천에 와서도 정신과를 두 번이나 찾았어요. 병가는 허락해 줬지만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5일 이상 휴가를 낼 수 없었죠. 또다시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어요"

oh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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