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게 외로움"…전염병이 바꾼 농촌마을 풍경

송고시간2020-03-20 10:46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시골 노인들 온종일 두문불출 "이웃들 얼굴 보기도 힘들어"

전문가들 "방안 생활만 하지 말고 무리 없는 일상생활 필요"

어르신 돌봄 서비스
어르신 돌봄 서비스

[해남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해남=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게 외로움이요."

"온종일 입 뗄 일이 없으니 가끔 정신도 흐릿해지고, 팔십 평생에 이런 일을 다 겪어 보네요."

19일 오후 전남 해남 송지면 마봉마을에서 만난 박 모(84) 할머니는 봄이 왔는데도 도통 세상사는 낙이 없다고 했다.

이맘때면 마을단위로 꽃놀이도 다니고, 농사 준비로 주변이 한창 들썩거려야 할 시기인데도 온 마을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경로당에 모여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면서 한식구처럼 생활하던 보금자리(독거노인 경로당 공동생활사업) 이웃들도 경로당이 폐쇄된 이후 각자의 집에서 두문불출이다.

박 할머니는 TV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괜스레 서러운 마음도 들고, 고독감이 커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자식들한테도 절대 집에 오지 말라고 하고, 나도 자식 집에 나들이할 생각도 안 하고 산다"며 "노인네들이야 다들 지병 한가지씩은 달고 사는 데 코로난가 뭔가가 치명적이라고 하니까 아예 사람을 안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몇십년씩 한동네 살면서 거리낌 없이 드나들던 이웃들도 하루 한 번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코로나가 바꾼 시골 마을 풍경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넘어 스산함까지 자아내고 있다.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코로나19는 무서운 감염병이기도 하지만 홀로 견뎌야 하는 외로움과 싸움처럼 보였다.

해남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만여명 전체의 30%에 이르고 이 중 7천900여명이 홀로 생활하는 노인이다.

이들 농촌마을 어르신들의 일상은 꼼짝없이 '셧다운' 된 것이나 다름없다.

노인층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경로당과 마을회관을 비롯해 노인복지회관, 노인대학, 경로식당, 공중목욕장 등 노인시설과 프로그램 운영이 모두 전면 중단됐다.

무료 경로식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에게는 노인복지관에서 하루 한 번 점심 도시락만 배달된다.

고위험 치매 노인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는 1대 1 관리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긴 하지만 이들의 불편을 모두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매일 1대 1 치매 관리로 가정방문을 하는 해남군 보건소 관계자는 "대부분 인력이 코로나 대응 관련 팀으로 지원을 나가고, 관련 프로그램도 중단된 상황이라 어르신들의 일상을 세세히 보살피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특히 치매 어르신들 같은 경우 매일매일 관리를 안 해주면 치매 진행이 빨라질 수도 있고, 홀로 계시다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어 늘 걱정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외부인 접촉 우려가 거의 없는 시골까지 방안 생활만 하는 것은 오히려 노인 건강에 좋지 않다고 조언한다.

환절기 적절한 환기와 함께 가벼운 산책, 무리하지 않는 일상생활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군청 직원의 가정 방문 시에도 개인 위생수칙을 준수하고, 코로나19 발생지역에 대한 방문과 외부인 접촉을 자제하는 정도만 지켜도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해남군보건소 전은희 치매팀장은 20일 "가정 방문 시에 조금이라도 더 말동무라도 해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돌아설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고 개인 위생수칙 안내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chogy@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