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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 광기의 지옥도…'페인티드 버드'

송고시간2020-03-2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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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티드 버드'
'페인티드 버드'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세 시간 동안 눈앞에 지옥이 펼쳐진다. 어쩌면 지옥보다도 더 끔찍할 것만 같은 가학적이고 고통스러운 광경이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페인티드 버드'는 2차 세계 대전이 펼쳐지는 무렵으로 추정되는 시기, 동유럽을 배경으로 한 유대인 소년이 겪는 고난에 대한 이야기다. 저지 코진스키의 동명 소설(국내에는 '잃어버린 나'라는 제목으로도 출판됨)을 원작으로 한다.

한 유대인 소년이 전쟁을 피해 한 아주머니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아주머니가 갑작스럽게 죽자 소년은 지내던 집을 할 수 없이 떠나고, 그때부터 그의 고난이 시작된다.

긴 상영 시간 동안 펼쳐지는 소년의 여정은 여러 챕터로 나뉜다. 한 챕터는 소년이 그 챕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름을 따서 지었다. 소년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겪는 일들은 그리스·로마 신화 오디세우스의 모험 같기도, 성경에 나오는 욥의 고난 같기도 하다.

'페인티드 버드'
'페인티드 버드'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소년을 잔인하게 학대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사람들은 소년에게 가학적인 폭력을 가한다. 소년을 멍석에 말아놓고 집단 폭행하거나,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속여 그를 성폭행한다. 병을 낫게 한다며 땅에 머리만 내놓은 채 파묻어놓아 까마귀들이 소년의 머리를 쪼는 장면까지 모든 챕터에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광경이 펼쳐진다. 영화가 흑백임에도 잔인함이 반감되지 않고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직접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더라도 인간 본성의 잔인함을 눈앞에서 보게 된 소년 역시 챕터를 거듭할수록 변해간다. 초반 어른들에게 무방비하게 맞던 소년은 여러 일을 거치면서 길을 가던 노인을 때려 물품을 빼앗을 정도로 폭력에 물들어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소련 병사 미트카 말을 마음속에 새긴 소년은,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때린 남성에게 끔찍한 복수를 가한다.

'페인티드 버드'라는 제목이 소년을 상징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소년의 여정 중 그를 잘 돌봐준 새 장수가 새 한 마리 날개에 페인트칠해 하늘 위 새 무리로 날려 보낸다. 그러자 다른 새들이 자신과 같은 새라는 것을 못 알아보고 페인트칠을 한 새를 공격한다. 같은 인간임에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너무 당연하게 배척받는 소년의 모습을 은유한다.

'페인티드 버드'
'페인티드 버드'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의 배경은 동유럽으로만 묘사될 뿐 구체적인 지역이 나오지 않는다. 소년을 학대하는 사람들의 국적이나 출신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독일 군인들은 독일어를, 소련 군인들은 러시아어를 쓰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언어를 쓴다.

하비 케이틀, 스텔란 스카스가드, 우도 키에르 등 낯익은 배우가 출연한다. 주인공 소년을 연기한 페트르 코틀라르는 연기 경험이 없던 신인이지만 뛰어난 연기를 펼친다.

바츨라프 마르호울 감독이 각본, 연출, 제작을 총괄했으며 제작기간은 11년에 달한다. 지난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아카데미영화제 국제장편영화상 예비후보에도 올랐다.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첫 공개됐을 때 끔찍하고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에 퇴장하는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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