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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사진 대모가 찾은 마녀의 흔적

송고시간2020-03-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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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아라리오갤러리 개인전 '그림자의 눈물'

박영숙, 그림자의 눈물 6 (Tears of a Shadow 6), 2019, C-Print, 180 x 240cm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박영숙, 그림자의 눈물 6 (Tears of a Shadow 6), 2019, C-Print, 180 x 240cm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1세대 페미니즘 사진가 박영숙(79)은 제목부터 강렬한 대표작 '미친년 프로젝트' 등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자연스럽게 사진의 중심은 여성이었다. 여성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도발적인 인물 사진 등으로 여성 해방을 부르짖었다.

종로구 삼청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26일 개막한 박영숙 개인전 '그림자의 눈물'에서는 여성이 사라졌다.

기존 작품에는 여성 신체가 화면을 압도하며 존재감을 내뿜었지만, 이번에 선보인 신작 '그림자의 눈물' 연작 18점에는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제주도 곶자왈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풍경 사진을 처음 시도했다.

곶자왈은 '가시덤불 숲'의 제주 방언이다. 말 그대로 가시나무 넝쿨이 어지럽게 엉킨 쓸모없는 땅이다.

인물이 사라진 사진에는 각종 오브제가 자리 잡았다. 웨딩드레스, 어머니 사진, 아버지에게 받은 카메라 등 작가의 추억이 담긴 물건부터 립스틱, 실과 바늘꽂이, 장난감 등 각종 소품까지 다양하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음산함과 신비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공간, 누군가 그곳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오브제들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이를 '마녀의 흔적'이라고 표현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한 마녀들, 혹은 마녀처럼 억울하게 사회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존재를 끄집어낸 셈이다.

작가는 버려진 땅에서 마녀라는 버려진 여자들이 있었던 풍경을 상상하고 포착했다. 거기 놓인 물건들은 마녀의 흔적이자 박영숙의 흔적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2016년 기괴한 나무가 있는 주인 없는 땅 곶자왈에 갔는데 마녀가 왔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막연하게 작업에 사용하기 위해 여러 물건을 모으던 그는 곶자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오브제가 여성의 자리를 채운 풍경 사진을 시작했다.

그는 "어쩌면 마녀 작업은 무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준비하던,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며 "마녀들이 살았을 것 같은 흔적이 가슴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라고 했다.

이어 "여전히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그 정체성을 떠날 이유가 없다"라며 "내 안에 여전히 마녀성이 있고, 마녀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것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6월 6일까지.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1세대 페미니즘 사진가 박영숙이 26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 '그림자의 눈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1세대 페미니즘 사진가 박영숙이 26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 '그림자의 눈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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