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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원의 헬스노트] 코로나19 논문 '800건 중국 vs 28건 한국'…왜?

송고시간2020-03-3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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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서 논문 요청 빗발치지만, 준비 부족으로 임상데이터 구축 '난망'

전문가 "감염병 전쟁에서 신속한 임상데이터 확보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앙임상위원회조차 데이터 없어 '발 동동'…"데이터 구축에 별도 인력 써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전 세계 의료진들에게서 한국의 (코로나19) 환자 임상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지만, 마땅히 전해줄 게 없어 난감합니다."

평소 외국 의료진과 공동연구가 많은 서울대학교병원의 한 교수는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의 임상데이터 분석과 공개가 늦어지는 현 상황을 이같이 귀띔했다.

국내에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지 70여일이 지났고, 누적 환자 수는 1만여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이 환자들에 대한 임상데이터 공개가 늦어져 국제사회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전자도서관인 펍메드 센트럴(PMC) 등 국제학술지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31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나온 코로나19 관련 논문 중 국내 연구팀이 발표한 건 28건(국내 발행 국제학술지 포함) 정도에 그친다. 그나마 이들 논문에 쓰인 환자 데이터는 현재 상황과는 최소 1개월여 이상 시차를 보인다.

이는 중국발 코로나19 사태의 대유행 이후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과 '랜싯'(The Lancet) 등 유명 국제학술지가 관련 논문에 대한 신속 게재 방침을 밝히면서 임상 데이터 공개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이런 논문 증가에 가장 큰 몫을 한 건 중국이다. 중국은 코로나19가 후베이성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하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총 800여건에 달하는 코로나19 관련 임상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하루 10건 이상의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코로나19 환자 수가 우리보다 적은 일본도 약 22건(공동연구 포함)의 논문이 발표됐다.

코로나19 현미경 사진
코로나19 현미경 사진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제공]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 사태에서 신속한 임상데이터 발표가 중요한 건 누적 사례를 바탕으로 현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의료자원을 재배치하고 새로운 방역 대책을 마련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어서다.

이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연구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염병이 먼저 휩쓸고 간 나라의 사례를 참조하고 분석하는 것은 자국의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 입장으로만 보자면, 코로나19를 먼저 치른 중국이 여러 임상 논문을 시의적절하게 발표함으로써 국내 방역에 큰 도움이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에서 볼 때 국내에서 임상 데이터 확보와 발표가 늦어진 건 문제가 크다고 지적한다.

방지환 서울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대유행 상황이 된 코로나19는 이제 전 세계 모두의 문제여서 각국의 임상데이터 공개가 빠르면 빠를수록 환자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환자 임상데이터 집계가 늦어지면서 논문조차 쓸 수 없었고, 결국 논문에 관한 한 국제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환자 치료의 콘트롤타워인 중앙임상위원회조차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임상위 관계자는 "31번째 환자 전까지는 그나마 임상데이터를 확보해왔으나 대구·경북지역 확진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후에는 임상위도 (데이터가) 깜깜한 실정"이라며 "해당 지역 의료진이 사례보고양식(CRF, Case-report form)을 입력할 여력이 없는 데다, 질본과 지자체가 데이터를 갖고 있어도 공유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자체적으로 전자보고양식을 만들어 데이터 입력을 독려해 약 600건을 추가로 확보했지만, 아직 질적인 관리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중증도별, 지역별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문에 쓸만한 데이터로 만들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만은 현장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터져 나온다.

개원가의 한 내과 전문의는 "방역당국이 이런 부분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의료진이 현장에서 넘쳐나는 환자들을 돌보기도 벅찬데, 총 66개에 달하는 문항을 직접 써넣어야 한다면 (환자 데이터) 입력에 속도를 낼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심지어 미국에서는 국내 방역지침에 대한 영문판을 달라는 요청이 있지만 이런 게 없어 미국에 간 후배 의사가 한국 지침을 보고 직접 영문판으로 번역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강대희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임상데이터의 신속한 확보와 공유는 전 세계적인 감염병 전쟁에서 인간이 쓸 수 있는 무기 중 무엇보다도 강력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방역 당국이 통합정보센터를 만들어 임상정보나 역학정보를 입력할 인력을 확보하고 전문가들이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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