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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신뢰가 생명인 수능에 대리시험…부정행위 방지장치 재정비해야

송고시간2020-04-0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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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현역 병사가 선임병 대신 응시하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대학입시 대리시험은 꿈도 못 꾸는 시대에 산다고 믿었던 대다수 국민에게 작지 않은 충격일 듯싶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개학이 미뤄지고 특히 수험생인 고3은 정상 수업도 못 하는 상황에서 들려온 소식이어서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군 당국에 따르면 공군 모 부대에서 복무 중인 A 병사는 작년 11월 치러진 수능에서 당시 선임병이던 B씨를 위해 시험을 대신 봐줬다. B씨는 A씨가 얻은 수능 점수로 정시전형을 통해 대학 3곳에 지원했고, 일부 학교의 합격권에 들었다고 한다. 교육 당국은 지난 2월 국민신문고 공익제보로 접수되기 전까지 이런 내용을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군 경찰 등은 A씨와 지난달 전역한 B씨를 수사 중인데 철저한 경위 조사와 엄벌이 불가피하다.

이번 사건은 수능 신뢰도를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특히 시험감독 체계에 큰 허점을 드러냈다. 수험표에는 실제 시험을 본 A씨가 아니라 B씨의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도 시험이 모두 끝날 때까지 대리시험 사실은 적발되지 않았다. 시험감독관이 한두 명도 아닌데 아무도 몰랐다는 점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수능 감독관은 시험실마다 2명(탐구영역은 3명)씩 들어가고 교시별로 다른 감독관으로 교체된다. 감독관은 응시원서를 묶은 서류철을 들고 다니면서 수험표와 신분증, 수험생 얼굴을 일일이 대조한다. 감독관들이 신분 확인을 철저히 한다면 대리시험은 일어나기 힘든 셈이다. 부실 감독 의혹이 제기되는 건 당연하다. A 병사가 B씨 외모와 비슷하게 꾸몄다고 해도 매 교시 이뤄지는 본인 확인 절차를 모두 빠져나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수능 대리시험은 2004년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15년 만에 또 터진 것이다. 2005학년도 수능에서 대리시험과 함께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대거 확인돼 200여 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됐다. 당시 적발된 부정행위 수법을 보면 특정 과목을 잘하는 '선수'가 휴대전화를 시험장에 숨겨 가지고 들어간 뒤 정답 번호를 뜻하는 숫자를 밖에서 대기하던 '도우미' 후배들에게 보냈고, 이들이 다른 응시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본인 확인 절차 강화, 모든 전자기기 반입 금지, 필기구의 현장 지급 등 현행 부정행위 방지 체계가 만들어졌지만, 이번 대리시험 사건으로 대대적인 재정비가 불가피해졌다. 지난해에는 수능 성적 발표를 이틀 앞두고 성적 유출 사고가 터져 보안상 구멍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조작만 하면 미발표 수능 성적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성적표 발급도 가능했다. 사전에 성적을 확인한 수험생들이 표준점수와 등급을 서로 비교해 '등급 컷'을 유추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번 대리시험 사건은 정부가 대입 공정성 강화를 위해 수능 위주인 정시 비율을 기존 29%에서 40%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터졌다. 교육 당국은 당혹스럽겠지만 부정행위 방지 장치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수능은 한국 사회에서 마치 공정성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교사들의 주관적 평가와 '부모 찬스' 논란이 있는 수시 대신 정시를 훨씬 공정하다고 보는 시각이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1점 차이로 희망대학 합격·불합격이 갈리는 피 말리는 대입 현실에서 대리시험을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대리시험은 단순히 한순간의 실수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사전에 계획된 범법행위이자 교육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중대 사안인 만큼 아예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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