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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면 곤장 50대'에도 조선 군인이 탈영한 까닭은

송고시간2020-04-1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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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연이 펴낸 '군영 밖으로 달아난 한양 수비군'

2017년 왕실 호위군 재현 행사
2017년 왕실 호위군 재현 행사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군대는 규율이 엄격하고 통제가 잘돼야 하는 조직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1808년에 편찬한 책인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탈영병은 곤장을 맞았다. 수도 수비를 맡은 훈련도감 군인은 특히 탈영 시 처벌이 엄했다. 초범은 곤장 50대에 처했고, 재범은 사형인 효시형 대상이었다. 병영 물건을 훔친 사람은 바로 극형을 받았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중연이 펴낸 12번째 고전탐독 '군영 밖으로 달아난 한양 수비군'에서 "훈련도감의 도망병 처리가 가장 엄격했던 것은 아마도 도망병이 속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중연이 역주 작업을 진행 중인 훈련도감 기록 '훈국등록'(訓局謄錄)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에서 윤 연구원은 조선시대에 도망병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통제된 조직에서 받는 정신적 혹은 육체적인 고됨과 열악한 처우, 군병들 사이에서 일어난 신고식 관행과 가혹행위를 주요 탈영 요인으로 추정했다.

윤 연구원은 1625년 인조가 황해도에서 도망병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를 묻자 무신 신경유가 인심이 매우 사납고 관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군사들이 떠맡아서 하는 형편이라고 답한 이야기를 근거로 처우와 탈영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도망병은 어떻게 잡았을까. 탈영한 병사가 오랫동안 체포되지 않으면 가족이나 친족을 대신 잡아들여 자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윤 연구원은 1682년 양주에 사는 김구정 사례를 소개했다. 김구정은 군인인 동생이 도망쳤다는 이유로 감금됐는데, 농사로 바쁜 시기가 되면 잠시 석방돼 일하기도 했다. 도망병 가족은 세금인 군포(軍布)를 대신 내기도 했다.

백영빈 한중연 연구원은 도망과 자살 원인이 된 신고식에 대해 "인간관계 질서를 중요시했던 조선시대 유교 사회에서는 힘 있는 관료 조직일수록 '그들만의 리그'로의 진입이 혹독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에는 새로운 관원이 되면 진귀한 음식을 여러 차례 조달하고, 한 달 내내 숙직을 서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 연구원은 이 같은 혹독한 신입 신고식이 타파해야 할 사회적 세습이었으나, 신고식으로 위장된 괴롭히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92쪽. 1만6천원.

'도망치면 곤장 50대'에도 조선 군인이 탈영한 까닭은 - 2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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