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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n스토리] 전남대에 12억원 기부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

송고시간2020-04-2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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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 포기하고 서울서 구두 수선 김병양 할아버지…전남대 디지털도서관 건립기금 기부

전남대에 12억원 기부한 구두수선공 할아버지
전남대에 12억원 기부한 구두수선공 할아버지

[전남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어머니가 중학교 입학시험 보라고 그렇게 권했었는데…."

학교 대신 돈벌이를 택해 평생을 산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20일 전남대에 12억원 상당의 디지털도서관 건립기금을 기부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김병양(84) 할아버지다.

김 할아버지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구한 가정사에도 자신을 진학시키려 노력한 어머니의 고생이 평생 마음의 짐이 된 탓이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할아버지는 중학생이 되는 것 대신 직공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전남대학교의 전신인 도립 농과대학 시절 정문 앞 신안동에 있던 식용유 제조공장을 다녔다.

김 할아버지는 "당시 전남대에도 수시로 드나들며 놀곤 했어요. 그 당시엔 빨간 벽돌공장도 있었고,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변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69년 즈음에 상경해 식용유, 얼음 등을 배달하며 서울 명동에서 터전을 잡았다.

남대문시장에서 짐받이 자전거에 물건을 가득 싣고, 명동 한복판을 내달리며 돈을 제법 모았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쯤, 배달일로 명동을 드나들던 것을 계기로 어쩌다 구두수선가게를 인수했다.

나이 쉰이 넘어서 구두 수선공이 된 그는 '명동 스타사'라는 간판을 세워 서울 멋쟁이들의 구두, 핸드백 등을 수선했다.

30년을 넘게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며 한때는 직원이 25명까지 늘기도 했고 서울 유명 명품판매점과 백화점, 대기업에서 수시로 김 할아버지 솜씨를 찾기도 했다.

가죽 염색약 냄새가 어찌나 독하던지 코가 얼얼할 정도였지만, 견뎌내며 감쪽같이 고쳐내 수입 명품 수선점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 할아버지는 은퇴했지만, 현재 명동 스타사는 그의 딸이 물려받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전남대에 거액을 기부한 뜻을 묻는 말에 김 할아버지는 "나이 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아내도 건강이 좋지 못하다"며 "자식들에게 더해줄 것도 없어, 죽기 전에 고향에서 제일 좋은 전남대학교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는 "그저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하게 성장해 주면 좋죠"라고 말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김 할아버지에게 감사패를 수여한 전남대는 기부의 참뜻을 기리는 다른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구두 수선대에 앉은 김병양 할아버지
구두 수선대에 앉은 김병양 할아버지

[전남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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