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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등이라도 닦아줄 수 있게, 잘 가라는 인사라도 하게…"

송고시간2020-04-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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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완치 68세 '왕언니'…78세 남편은 중증환자로 투병 중

"외로움·우울함과 싸움…위로 등 정신적 부분 중요해"

코로나19 완치자 이모씨
코로나19 완치자 이모씨

(대구=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지난 23일 대구 동구 한 카페에서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이모(68)씨 아들이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아직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 남편은 3번의 음성 판정에도 상태가 나빠 여전히 대학병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남편을 만나지 못한 지 7주째가 되어 간다며 눈물을 훔쳤다. 2020.4.26 sunhyung@yna.co.kr

(대구=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저 개나리가 피면 내가 집에 돌아가려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구보훈병원에 입원한 이모(68)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2층 병실 창가에서 뒷동산에 길게 늘어선 개나리 가지를 바라봤다고 한다.

이씨는 지난 2월 남편(78)이 코로나19에 감염되자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검사한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

2월 29일 입원해 지난달 24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할 때까지 한 달에 가까운 투병생활은 외롭고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에도 봄날은 온다'
'코로나19에도 봄날은 온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3일 대구 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씨는 행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한 번도 마스크를 내리지 않았다. 조심 또 조심하는 모습에서 그간 마음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환자들끼리 서로 위로를 주고받고…정신적인 부분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5인실에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도 우울하고 외로웠다"며 "매일 눈물로 지새웠고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하는지 원망도 많이 했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입원 초반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링거에만 의지했다.

밤 9시가 되면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하루 세시간 이상을 자지 못하는 불면의 고통 속에서 입원 기간 내내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약 외에 수면제, 소화제를 복용해야 했다.

이씨는 "무슨 병이 그렇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라며 "숨도 답답하고 목에 가시가 들어간 거 같이 아프고 토하고, 설사까지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정신없이 바쁜 의료진
'코로나19', 정신없이 바쁜 의료진

(대구=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3월 1일 오후 대구시 달서구 대구보훈병원에서 의료진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ondol@yna.co.kr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은 함께 생활한 환자들과 의료진의 말 한마디였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장인상을 치른 한 의사가 다가와 말없이 등을 두들겨 줄 때를 회상하며 "의료진이 하나 같이 인자하고 살신성인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죄송하고 안타까웠다"며 "다들 '여름이 되기 전에 빨리 저 옷을 벗고 편안해져야 할 텐데'라는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또 "20∼30대 환자들은 무증상자들이 많았다"며 "아프지 않아 밥도 잘 먹는 걸 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증상자가 많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고 말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대구=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4월 1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음압병실 근무를 마친 의료진이 얼굴에 붙은 테이프를 떼고 있다.
hama@yna.co.kr

60대 후반인 그는 병원에서 '왕언니' 또는 '어르신'으로 불렸다고 한다.

중환자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 남편도 저러고 있겠구나"라며 눈물을 쏟아낼 때마다 같은 처지에 놓인 환자들은 "왕언니 울지 말아요. 힘내야 합니다"라고 달랬다고 한다.

함께한 47년 세월에 한순간도 떨어져 있은 적이 없는 남편은 코로나19 중증환자로 분류돼 7주째 대구가톨릭대병원 음압 병동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남편은 이달 들어 3차례 코로나19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상태가 위중해 일반 중환자실로 옮기지도 못한다.

자신보다 사흘 먼저 입원한 남편을 119구급차에 태워 보낸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는 남편이 의식이 있을 때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는 "하루만이라도 당신 곁에 있으면 좋겠다. 퇴원을 못 하면, 내가 방호복을 입고서라도 당신 등이라도 한번 닦아줄 수 있게. 잘 가라는 인사라도 하게 해달라고…"라고 눈물을 훔쳤다.

이씨가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식들은 대학병원 의료진 배려로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할 수 있었다.

산소호흡기를 착용해 말을 못 내뱉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리 퇴원 언제 하냐"고 자필로 써서 물어봤다고 한다.

"우리 퇴원 언제 하노"
"우리 퇴원 언제 하노"

(대구=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이모(68·왼쪽 여성)씨 아들이 지난 23일 대구 동구 한 카페에서 중증환자인 아버지가 쓴 글을 보여주고 있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버지는 영상통화에서 자필로 '우리 퇴원 언제 하노'라고 아들에게 물었다. 2020.4.26 sunhyung@yna.co.kr

이씨는 "음성이 두 번 나오면 완치로 분류한다고 하는데 의료진에게 들으니 그 완치가 진짜 완치가 아니라고 하는 얘기도 있더라"라며 "나 역시 퇴원해서 나왔지만 계속 조심하고 사람들 곁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는 자발적인 사회적 격리 상태다.

그는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도 괜히 나를 꺼리는 거 같고 당당하지 못한 마음이 든다"며 "이게 무슨 병인데 이렇게 사람 취급도 못 받는지, 죄책감까지 들어 마음에 상처가 너무 큰 병"이라고 했다.

이어 "확진됐던 사람들은 완치 판정을 받고도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는 외로움을 겪는다"고 털어놓고 "오랫동안 혼자였는데 나와서도 혼자여야 한다는 자괴감 때문"이라며 완치자들을 사회가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랐다.

sunhy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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