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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며 식사' 악마의 수용소, 형제복지원 증언으로 본 참상

송고시간2020-04-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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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호 기자
차근호기자

평생 트라우마로 각인된 피해자 21명의 끔찍한 기억

옆동네 갔다가 끌려간 원생 "맞다가 죽는 사람 목격"

오빠 기다리다 수용 피해자 "정신병동서 강간, 낙태"

사망자 보거나 들은 경험만 83.2%…3.4%는 사망자 처리 참여

형제복지원 참상
형제복지원 참상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용역]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은 그날의 학대를 아직도 생생한 언어로 기억해 내며 절규하고 있었다.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수용돼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트라우마로 각인된 형제복지원 피해자 21명의 기억을 27일 부산시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이들 피해자 심층 인터뷰는 전문가 6명이 40일간, 면접자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에서 진행한 것이다.

'면접 참여자 21'은 초등학교 2학년 때쯤 형제복지원에 들어갔다.

친구랑 옆 동네 놀러 갔다가 형제 복지원 단속반에 의해 구타를 당하고 끌려갔다.

그는 "아동 소대에 소속됐다. 제식훈련 때 한 사람이라도 틀리면 밥을 늦게 먹고 방망이로 맞곤 했는데, 맞다가 죽는 사람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아저씨들은 맞아서 머리에 피가 흐르는 채로 밥을 먹기도 했다"면서 "교회에서 만나면 얘기 많이 하고 아들 같이 대해주던 아저씨가 어느 날 안보여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죽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 적도 있다"고 밝혔다.

형제 복지원 차량
형제 복지원 차량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용역]

그는 개금분교에서 수업을 듣기는 했지만 "교과 내용보다는 박인근 원장 일대기 같은 내용을 주입식으로 배우고 그랬다"고 기억했다.

이어 "자기 전 점호를 하는데 틀리면 반복하고 때리고 하다가 중대장이 나가면 그 안에서 또 구타가 시작됐다"면서 "소대장이 성폭행을 많이 했다. 그 사람 말고도 성폭행하는 분대장, 소대장, 조장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면접 참여자 15'는 방학 때 부산역 앞에서 오빠를 기다리다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어린 나이지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바로 여성소대로 가게 됐다.

그는 "여자들에게 브래지어를 지급하지 않았고, 생리대도 지급하지 않고 천만 4개 지급했다"면서 "허벅지가 터지도록 매 맞고 정신병동에서 몇 개월 일하게 됐는데, 거기서 강간당하는 사람들과 낙태 수술을 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소대 안에 장애인들이 있었는데 오줌을 쌌다고 한겨울에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 타일 바닥에 눕힌 채 마포 걸레로 몸을 마구 닦는 것을 보고 눈물 나게 가슴 아팠다"고 회상했다.

그는 형제복지원에서 성폭행을 당해 아이까지 출산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양이 돼버렸다고 전했다.

탈출을 위해 소대장이 됐던 '면접참여자 4'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옛 형제복지원 수용자 신상기록 카드
옛 형제복지원 수용자 신상기록 카드

[부산사회복지연대 제공=연합뉴스]

연구팀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직원은 박인근 일가 외 거의 없었고, 군대와 교도소식 원생 간 관리체계를 구축해 '악마의 수용소'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생매장을 했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면서 "당시 글을 쓸 수 있었다면 기억이 선명했을 때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일들, 억울하게 생매장당한 사람들의 위치 등을 적어서 남겨놓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자신이 한스럽다"고 전했다.

고아원을 탈출해 넝마 생활을 하다가 형제복지원 단속반에 붙잡힌 '면접참여자 1'은 탈출 경력 때문에 전과자로 취급돼 끔찍한 구타와 체벌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다시 고아원에 보내진 뒤 반복된 탈출 시도 끝에 벗어났다"고 말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30년 만에 법원서 재심리할 듯 (CG)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30년 만에 법원서 재심리할 듯 (CG)

[연합뉴스TV 제공]

'면접 참여자 2'는 열차를 잘못 타 부산역에 왔다가 단속반에 잡혔다.

수용 기간 중 맞아서 고막이 터지고 지속적인 성폭행에 시달렸다.

전기기술자였던 '면접 참여자 13'의 일부 발언은 공식 용역보고서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박인근 원장의 살인 가담설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1980년 사업차 부산에 갔다가 싸움에 휘말려 수용됐지만, 전기기술자라는 직업 탓에 박 원장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그는 진술했다.

그는 "원장실은 사무실 옥상에 따로 지어놨는데, 그 안에 야구방망이처럼 깎은 몽둥이 열댓 개, 대장간에서 만든 수갑 30개가 걸려있었다"면서 "하루는 원장이 불러서 가 보니까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사건 대법에 비상상고 (PG)
'형제복지원'사건 대법에 비상상고 (PG)

[정연주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연구용역팀이 조사한 전체 피해자 149명 중 수용자들은 당시 15세 이하가 74.5%로 가장 많았다.

열 명 중 여덟명(79.7%)은 납치 또는 강제 연행으로 수용됐다고 말했다.

성추행(38.3%), 강간(24.8%) 등 성 학대가 빈번했고, 자상(67.2%)을 비롯해 평균 4.7개 신체 부위를 다쳤다.

수용 기간 시설 내에서 사망자를 보거나 직접 들은 경험은 83.2%에 달했고, 3.4%는 사망자 처리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고 답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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