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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뜻밖에 '자활 실험'…노숙인 5천400명에 호텔스위트룸

송고시간2020-04-2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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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투숙 뒤 '미래 생각' 시작"…거리생활 청산 이어질지 주목

영국 런던의 노숙인[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영국 런던의 노숙인[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시도한 노숙인 보호대책이 의외의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봉쇄령 며칠 뒤인 지난달 26일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노숙인들을 실내에서 보호하자는 서한을 사회사업단체들에 보냈다.

자선단체들은 이에 따라 노숙인들과 접촉해 휴대전화기를 나눠주고 정부가 확보한 홀리데이인, 트래블로지스, 베스트웨스턴 등 호텔 객실에 투숙하라고 안내했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투숙객이 실종된 이들 호텔을 징발해 빌려 쓰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하거나 봉쇄령 때문에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워진 노숙인들은 버스, 지하철, 택시를 타고 앞다퉈 호텔로 몰려들었다.

중앙·지방 정부, 자선단체, 공공의료기관인 국민건강서비스(NHS)가 협력해 시행한 이 프로그램에 따라 호텔에 묵게 된 노숙인들은 런던 1천800명을 포함해 5천400명에 달했다.

노숙인들은 샤워실, 비데가 달린 변기, 텔레비전, 침대를 이용하고 하루 세 차례 식사를 제공받으며 사회복지사들과 매일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선데이타임스는 사로잡혀 거리에 나앉은 노숙인들의 심리가 한 달 동안 이어진 호텔 투숙을 통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영국에서 코로나19 확산 속에 자가격리를 선언한 노숙인[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영국에서 코로나19 확산 속에 자가격리를 선언한 노숙인[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당뇨병과 천식 등 지병 때문에 코로나19가 더 무서워 호텔을 찾은 노숙인인 에리스(55)는 "미래를 생각할 기회가 왔다"고 털어놓았다.

에리스는 "내 삶을 다시 추스르고 뭔가 유용한 일을 하고 싶다"며 "학교에 가거나 사회적 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간호사였다가 퇴행성 척추질환 탓에 퇴직한 뒤 친척들의 집에 살았으나 거기서 학대를 받아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한 전력이 있다.

자선단체들은 노숙인들의 마인드 변화가 삶을 전체적으로 개선할 전례 없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노숙인 자선단체인 세인트 멍고스의 대표인 하워드 싱클레어는 "끔찍한 이유로 집행된 조치일지는 몰라도 한 달 전에는 없던, 삶을 바꿀 기회를 얻었다"며 "우리로서는 한 달 동안 수천 명과 함께 노력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노숙자 쉼터라며 제공된 호텔 주차장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노숙자 쉼터라며 제공된 호텔 주차장

[UPI=연합뉴스]

세인트 멍고스는 겨울철에 노숙인의 동사를 막기 위한 쉼터를 마련하는데 거기서 복지사와 어울려 미래를 고민한 노숙인 가운데 80%가 거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싱클레어는 "물론 숙소만 제공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는 결코 아니며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가 적지 않다는 점, 40% 정도가 전과자라는 점, 절반 정도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점 등 복잡한 문제가 있다"며 "그래도 자원을 잘 모으고 올바른 문제의식을 가진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조치가 완화되면 노숙인들이 쫓겨나 다시 거리를 메우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런던에서 2012년 하계 올림픽이 열릴 때 노숙인들이 거리를 떠날 수 있었으나 대회 폐막과 함께 다시 거리로 몰려나왔다는 얘기도 있다.

노숙인 자선단체인 크라이시스의 정책국장 맷 다우니는 "노숙을 2025년까지 종식하자는 목표를 이번에 며칠 만에 해치웠다"며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평소에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jangje@yna.co.kr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YJuwaAfjz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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