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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민식이법', 과거 처벌안하던 것까지 처벌?

송고시간2020-05-0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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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교통사고 처벌 대폭강화는 사실이나 틀린 주장들도 제기

이전에 형사처벌 대상 아니던 것을 처벌한다는 건 사실 아냐

'운전자과실 1%여도 처벌' 주장도 민·형사상 과실 동일시 따른 오해

과잉 처벌 논란 '민식이법'…찬반 논란 가열 (CG)
과잉 처벌 논란 '민식이법'…찬반 논란 가열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운전자의 업무상 과실로 일어난 어린이 교통사고를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스쿨존사고 가중처벌법'(일명 민식이법)을 두고 '악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수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지나친 형벌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서 시작된 '악법 논란'은 형사처벌할 필요가 없는 교통사고 운전자를 무리하게 처벌하는 '위헌적 법'이라는 논란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스쿨존사고 가중처벌법 탓에 이전에는 처벌대상이 아니었던 교통사고가 형사처벌을 받는 범죄가 됐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보행자의 과실이 90% 이상이고 운전자의 과실이 10% 미만이라도 차량과실이 잡히고, 조금의 과실이라도 있으면 유죄가 인정된다'라거나 '기존에는 형사처벌되지 않던 교통사고라도 스쿨존에서만 발생하면 무조건 처벌된다'는 등의 글이 올라온다.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우선 '과실이 조금이라도 인정되면 형사처벌된다'는 주장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형사사건의 과실과 민사사건의 과실 책임을 혼동한 주장으로 보인다.

민사사건에서 과실책임의 문제는 발생한 손해에 대해 '당사자가 어느 정도로 책임을 져야 하느냐'의 문제다. 즉 손해가 발생하면 과실책임을 물을 수 있는 당사자를 가려내고, 이들의 책임 비율을 따져 각 비율대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민사사건의 주요 절차다.

따라서 1%라도 과실이 있는 당사자는 그만큼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때문에 '과실이 얼마나 존재하느냐'가 민사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반면 형사사건의 과실은 '범죄행위에 대한 형사책임을 과실을 저지른 당사자에게 지울 수 있느냐'를 따지는 문제다. 즉, 사고를 낸 사람에게 형사책임을 감당케 할 정도의 과실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교통사고 관련 형사사건의 핵심이다.

교통사고 사건 전문인 정경일 법무법인 L&L(엘앤엘) 대표변호사는 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민사사건의 과실과 형사사건의 과실은 별개의 문제"라며 "민사과실이 인정돼도 형사과실이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쿨존 과속단속 카메라 (PG)
스쿨존 과속단속 카메라 (PG)

[권도윤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그렇다면 스쿨존 사고 가중처벌법상 '과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판단할까?

스쿨존 사고 가중처벌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업무상과실 교통사고죄'가 먼저 성립해야 하는데, 이 범죄는 일반적인 과실범죄가 아니라 '업무상과실' 또는 '중과실'이 인정돼야 성립한다. 즉 높은 수준의 주의가 요구되는 업무를 하는 사람 또는 높은 수준으로 주의해야 할 상황에 처한 사람이 주의 의무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낸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 당연히 스쿨존 사고도 이 같은 업무상과실과 중과실이 인정된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된다.

법원은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거나(예견가능성) 예견할 수 있었어도 사고발생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불가항력)인 경우엔 업무상과실 또는 중과실이 없다고 인정한다.

대법원은 2007년 7월 '고속도로 무단횡단 보행자의 교통사고' 사건에서 "운전자가 상당한 거리에서 보행자의 무단횡단을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사정이 있었고, 그에 따라 즉시 감속하거나 급제동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면 보행자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운전자의 (형사상) 과실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스쿨존사고 가중처벌법 탓에, 이 법 발효 전에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었던 교통사고가 형사처벌 된다'는 주장도 구체적인 법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민식이법의 핵심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 5조의13은 새로운 범죄 유형을 규정한 법 조항이 아니라, 기존 '업무상과실 교통사고죄' 중 스쿨존사고에 대해서만 특별히 형량을 높인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과실 교통사고죄 중 스쿨존에서 13세 미만 어린이를 상대로 사망사고나 상해사고를 낸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5년 이하의 금고'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던 업무상과실 교통사고죄를 13세 미만이 죽거나 다친 스쿨존 사고에 한해 사망사고는 '3년 이상의 징역이나 무기징역'으로, 상해사고는 '징역 1∼15년 또는 벌금 500만원∼3천만원'으로 처벌하도록 형량을 대폭 높인 것이다.

이미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으로 처벌되던 업무상과실 교통사고죄 중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사상 사고에 대해서만 처벌을 강화한 것이어서 '기존에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었던 교통사고가 새로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는 식의 주장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스쿨존사고 가중처벌법은 새로운 범죄 구성요건을 규정한 법이 아니라 기존에 처벌되던 범죄 중 특별한 범죄를 가중해 처벌하도록 한 법률"이라며 "스쿨존사고 가중처벌의 전제 요건인 업무상과실 교통사고죄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오래전부터 형사처벌하는 범죄"라고 말했다.

작년말 국회를 통과한 '민식이법' (CG)
작년말 국회를 통과한 '민식이법' (CG)

[연합뉴스TV 제공]

한편 일각에서는 스쿨존사고 가중처벌법 탓에 자동차보험이 있거나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 재판에 넘겨지지 않도록 한 '형사처벌 면책조항'을 스쿨존사고에는 더 이상 적용할 수 없게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피해구제 노력을 아무리 해도 형사처벌을 면할 수 없게 만든 '형벌 만능주의' 법 조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도 법률 규정을 오인한데 따른 것이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3조 2항과 4조는 업무상 과실로 교통사고를 냈더라도 자동차보험에 가입했거나 피해자와 합의하면 가해자를 재판에 넘기지 못한다고 규정하지만, 같은 조항 말미에 스쿨존사고 등 12개 유형의 교통사고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도록 한다. 애초에 스쿨존사고의 경우에는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스쿨존사고 가중처벌법 때문에 면책조항 적용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정경일 변호사는 "스쿨존사고는 본래부터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12대 중과실 교통사고 중 하나"라며 "스쿨존사고 가중처벌법을 두고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는 것은 전제부터 잘못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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