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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와인인 듯, 맥주인 듯…톡톡 튀는 젊은 막걸리

송고시간2020-06-0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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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수제맥주 양조법 접목한 DØK 브루어리

히비스커스와 석류즙을 첨가한 막걸리 '걍즐겨' [사진/조보희 기자]

히비스커스와 석류즙을 첨가한 막걸리 '걍즐겨' [사진/조보희 기자]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디오케이(DØK) 브루어리'라는 이름만 듣고선 수제 맥주 양조장인 줄 알았다.

북한산 자락에 있는 양조장 역시 수제 맥주를 파는 펍의 분위기다. 자리에 앉아 술을 주문하면 마치 생맥주를 따르듯 탭에서 막걸리를 따라 투명한 잔에 내온다.

와인잔처럼 생긴 술잔은 테쿠잔이라 불리는 맥주 전용 잔. 잔에 담긴 술은 가라앉은 막걸리 앙금이 섞이지 않아 와인이나 맥주처럼 투명한 빛깔이다.

'걍즐겨', '뉴트로', '두유노'. 이름에서부터 '힙'한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디오케이의 술들을 차례대로 시음해 봤다.

디오케이 브루어리 내부 [사진/조보희 기자]

디오케이 브루어리 내부 [사진/조보희 기자]

◇ 와인 같기도, 맥주 같기도 한 막걸리

붉은 빛깔이 매혹적인 '걍즐겨'로 자연스레 손이 먼저 갔다. 석류와 히비스커스를 첨가한 막걸리다.

이규민 대표가 권하는 방식대로 처음에는 투명한 윗술만 한 모금 입에 넣었다.

쌀에서 나온 막걸리 특유의 단맛에 석류와 히비스커스의 신맛과 베리 향이 어우러진다.

맑은 윗술만 마시니, 마치 달콤한 로제 와인을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엔 병 아래 가라앉은 앙금까지 섞어 맛을 봤다.

딸기우유처럼 핑크빛으로 변한 술은 질감이 부드러워지면서 맛과 향이 더 짙어진 느낌이다.

윗술만 마실때에 비해 더 걸쭉해졌지만, 텁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이 대표는 "맑은 부분만 마시면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는 느낌과 비슷하고 섞어 마시면 막걸리 특유의 걸쭉함을 즐길 수 있다"며 "병을 처음부터 흔들어 섞지 않고 맑은 윗술을 먼저 맛보고 난 뒤 섞어 마시는 것이 한 병으로 두 가지 맛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탭에서 막걸리를 따르는 모습 [사진/조보희 기자]

탭에서 막걸리를 따르는 모습 [사진/조보희 기자]

다음 차례는 '뉴트로'. 일반 막걸리보다 진한 빛을 띠는 이 술은 홍차인 잉글리시 브랙퍼스트와 레몬, 라임을 첨가한 막걸리다.

잔을 코에 갖다 대니 홍차의 우아한 향기가 먼저 올라온다.

'걍즐겨'와 달리 단맛은 거의 없지만, 레몬과 라임의 신맛과 홍차의 쌉싸름한 맛이 입안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맑은 윗술만 맛보면 마치 IPA 맥주를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드라이하면서도 상큼한 것이 단 술을 즐기지 않는 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맛본 '두유노'는 디오케이의 세 가지 술 가운데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막걸리와 가장 비슷한 느낌의 술이다.

막걸리를 빚을 때 누룩과 함께 천연발효종을 넣은 사워도우를 첨가해 발효시켰다고 한다. 빵 반죽인 사워도우 특유의 상큼하면서 쿰쿰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디오케이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막걸리들 [사진/조보희 기자]

디오케이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막걸리들 [사진/조보희 기자]

◇ 수제 맥주 기법 접목한 전통주의 혁신

와인 같기도 하고, 맥주 같기도 한 독특한 막걸리들을 선보이는 디오케이 브루어리는 갓 서른이 된 이규민 대표가 작년 8월 만든 신생 양조장이다.

대학에서 한식 조리를 전공하면서 막걸리 양조를 배웠던 이 대표는 졸업 후 덴마크의 수제 맥주 브루어리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수제 맥주의 세계에 눈을 떴다고 한다.

디오케이 브루어리의 술들은 당시 이 대표가 접했던 실험적인 맥주 양조법을 전통 막걸리에 접목한 결과물이다.

"제가 일했던 곳에서는 실험적인 스타일의 맥주를 많이 만들었어요. 반은 애플사이다 같고 반은 페일 에일 같은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기도 하고, 오이, 고수 같은 채소를 넣은 여름용 맥주도 만들었죠. 막걸리도 이런 방식으로 재미있게 만들면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오케이의 술들은 누룩과 쌀을 기본 재료로 한다는 점에서는 일반 막걸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부재료를 다양하게 첨가하고 맥주 만들 때 쓰는 효모를 넣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수제 맥주와 닮아있다.

막걸리 주재료인 고두밥을 식히고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막걸리 주재료인 고두밥을 식히고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이 대표는 맥주 양조 과정에서 발효가 끝난 뒤 홉을 더 첨가해 향을 극대화하는 '드라이 호핑' 기법을 막걸리에 접목했다. 막걸리 발효가 거의 다 끝난 시점에 다양한 과일이나 차 등을 첨가해 한 번 더 저온에서 숙성시키는 것이다.

부재료를 첨가하는 전통 막걸리들이 보통 밑술을 만든 뒤 덧술을 담글 때부터 부재료를 넣어 발효시키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부재료를 미리 넣으면 발효 도중 향이 날아가지만, 발효가 거의 끝난 시점에 첨가하면 그 향과 맛이 더 뚜렷하게 남는다고 한다.

누룩 외에 맥주용 효모를 첨가해 막걸리를 빚는 것도 디오케이만의 방식이다.

히비스커스와 석류즙이 첨가된 '걍즐겨'는 누룩과 함께 맥주 효모의 한 종류인 프렌치 세종을 넣어 발효시켰다.

디오케이 브루어리의 술을 만드는 이규민 대표(왼쪽)와 김홍민 씨 [사진/조보희 기자]

디오케이 브루어리의 술을 만드는 이규민 대표(왼쪽)와 김홍민 씨 [사진/조보희 기자]

설명을 마친 이 대표가 이번 봄·여름 시즌을 겨냥해 한정판으로 선보이는 술이라며 '북한산 피크닉'을 내왔다.

맥주 효모의 일종인 벨지안 트리펠과 패션프루트, 레몬, 엘더플라워, 국화, 우롱차 등 다양한 과일과 꽃, 차를 첨가한 술이다.

잔을 코에 갖다 대니 꽃향기가 진하게 피어올랐다. 맑은 윗술만 따라 한 모금 마시니 상큼하면서 부드러운 기포가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무슨 술인지 모르고 마셨다면 막걸리가 아니라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더운 여름에 딱 어울릴만한 술이다.

'디오케이 브루어리'는 술과 장을 담는 전통 '독'에서 따온 이름이다. 알파벳 'O' 대신 덴마크어 'Ø'를 쓴 것은 덴마크에서 일할 때 막걸리 양조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 만큼 초심을 잃지 말자는 각오에서라고.

수유동에 있는 양조장에는 간단한 안주와 함께 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막걸리를 테이크아웃 할 경우 병당 5천원에 구입할 수 있다.

예약하고 방문하면 술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시음해 볼 수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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