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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손, 공공개발]② 생활형 숙박시설에 밀려난 공공이익

송고시간2020-05-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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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규제한 도시계획 무력화…주거시설이지만 법상 숙박시설

규제 피해 북항 재개발지 등 공공개발지마다 우후죽순

전문가 "국토부가 맹점 없는지 들여다봐야"

북항 재개발 지역
북항 재개발 지역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최근 공공 개발이나 부산 해안가 개발에 불청객처럼 끼어들며 논란을 일으키는 시설이 있다.

부산 부동산 시장에서는 해운대역 일대에 2014년 처음 등장한 뒤 최근 몇 년간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 이야기다.

생활형 숙박시설은 건축법상으로는 호텔·모텔과 같은 '숙박시설'로 분류되지만,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어 장기간 숙박이 가능한 시설을 말한다.

사실상 주거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부동산 업계에서는 주거를 뜻하는 '레지던스'라고 부른다.

공동주택을 비롯해 주거시설이 들어설 수 없는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부산시 동부산 관광단지 사업지)에 최근 600세대 규모의 생활형 숙박시설이 마치 주거시설인양 분양에 나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 생활형 숙박시설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된 곳은 세계적인 해양관광문화 도시 조성을 비전으로 공공 개발이 이뤄지는 북항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서다.

생활형 숙박시설이 차지한 북항 재개발 지역
생활형 숙박시설이 차지한 북항 재개발 지역

[연합뉴스 자료사진]

부산시에 따르면 현재 북항 재개발 상업·업무 지구에 3곳의 건설사가 2천987세대의 생활형 숙박시설을 지을 전망이다.

당초대로라면 해양관광문화 관련 상업 시설 등이 들어와야 하지만 생활형 숙박시설이 이 공간을 모두 차지하게 돼버리며 계획이 엇나갔다.

김종구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항만재개발에 핵심인 해외 우수자본 유치를 통한 복합 리조트·마리나 건립 사업은 모두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변종 주거 단지만 먼저 들어서는 것이어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동구청도 산업단지를 만들려다가 주거단지로 전락한 센텀시티 개발이나, 특혜 논란만 남은 해운대 '엘시티' 사태가 북항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나올 수 있다고 걱정한다.

더욱이 한결같이 초고층으로 설계돼 수려했던 부산 북항의 스카이라인 훼손은 물론 시민의 공공 조망권 파괴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북항 재개발 지구단위계획을 보면 애초 이곳에는 아파트나 주상복합 등 공동주택은 지어지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생활형 숙박시설은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을까?

답은 앞서 밝힌 데로 생활형 숙박시설이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이어서 공동주택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건축법 시행령에서 생활형 숙박시설을 장기 숙박이 가능한 시설로 해놓았는데, '장기 숙박'이라는 문구 해석의 모호함을 이용해 '주거'로 활용하는 변종 시설"이라면서 "규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설로 해외에서는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생활형 숙박시설을 짓는 사업자는 공동주택에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아 사업성을 챙길 수 있고, 소유자들은 1가구 다주택에 해당하지 않고 증여·양도가 자유로운 점 등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빠르게 확산했다"면서 "국토부가 제도적 맹점이 없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유수면 매립해 만들었지만, 소수가 누리는 주상복합 단지로 변한 마린시티
공유수면 매립해 만들었지만, 소수가 누리는 주상복합 단지로 변한 마린시티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시관리계획 변경에 의해 이뤄지는 해안가와 강변 유휴부지 개발에도 생활형 숙박시설이 파고들어 난개발 논란이 인다.

공공개발사업은 아니지만,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에도 생활형 숙박시설 건립을 둘러싼 잡음이 일고 있다.

2013년 폐장한 이후 방치되던 광안리 해수욕장 인근 옛 '미월드' 부지를 최근 인수한 사업자는 해당 부지에 최대 42층짜리 생활형 숙박시설 3개 동을 짓겠다며 수영구에 경관심의위원회를 요청했다.

그동안 전 사업시행자들에 의해 논의되던 '특급호텔' 논의는 완전히 빠졌다.

문제는 이 부지가 2007년 공원에서 호텔이 들어설 수 있는 유원지로 바뀐 것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관광 활성화를 위한 특급 호텔이 필요하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변종 주거시설 등장으로 특급 호텔 건립 계획마저 밀어내고 주거단지화가 가능해졌다.

이에 대해 시행사 측은 "생활형 숙박시설이 주거 시설로 쓰일지 숙박시설로 쓰일지는 수분양자들이 결정하는 부분이고, 숙박 시설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주거 단지화라는 표현은 과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산에서 생활형 숙박시설은 해안가 조망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주상복합과 오피스텔을 역할을 이어받는 모양새다.

해안가 배후 상업단지(마린시티 등)에 진짜 상업시설을 밀어내고 사실상 주거시설인 주상복합과 오피스텔이 들어서면서 해양 경관을 사유화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과 규제가 강화되자 생활형 숙박시설이 회피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운대 엘시티 101층짜리 건물도 생활형 숙박시설이고, 센텀시티와 인접한 수영강 옆 한진 CY 부지에도 초고층 생활형 숙박시설 건립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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