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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포착] 박세리의 잊지 못할 연장 18번홀 맨발 투혼

송고시간2020-05-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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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 2연승 달성한 박세리
US오픈 2연승 달성한 박세리

[1999년 보도사진연감.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스무 살 박세리가 두 팔을 마구 흔들며 발을 내디디고 있다. 얼굴을 보면 새하얀 치아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다. 뒤쪽에선 갤러리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한다.

1998년 7월 7일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제53회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최고 권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니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게도 환호한 것은 그의 우승에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박세리는 태국계 아마추어 선수 제니 추아시리폰과 18홀 연장 대결을 벌였다. 연장전도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는 팽팽한 승부였다. 박세리는 14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역전했지만 이어진 15번홀에서 보기를 범해 같은 타가 됐고, 연장 마지막 홀인 18번홀 티잉그라운드에 섰다.

추아시리폰이 먼저 티샷을 날렸다. 볼은 페어웨이 약간 오른쪽 안전한 지점에 떨어졌다. 하지만 박세리의 티샷은 왼쪽 페어웨이에 떨어지더니 크게 튀어 오른 후 물이 가득한 해저드 쪽으로 굴러떨어졌다. 볼이 멈춘 곳은 내리막 급경사에다 물에서 20㎝밖에 떨어지지 않아 자칫 볼이 물에 빠질 수 있는 장소였다. 경기를 잃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잊지 못할 맨발의 박세리
잊지 못할 맨발의 박세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검정 반바지 차림의 박세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더니 성큼성큼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어 갤러리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골프채를 차분하면서도 힘차게 휘둘렀고, 볼은 페어웨이에 안전하게 올라섰다. 갤러리들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어진 세 번째 샷은 홀컵 5m 지점에 자리 잡았다. 이를 지켜보던 추아시리폰은 흔들렸고, 그의 어프로치샷은 홀컵을 지나버렸다. 18홀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경기는 서든데스로 넘어갔고 박세리는 서든데스 두 번째 홀인 11번홀에서 5.5m 버디퍼팅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메이저대회 2연승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앞서 5월 18일 박세리는 미국 델라웨어주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메이저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쓰며 세계 최고 스포츠 스타로 떠올랐다. 1997년 10월 프로 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한 지 7개월 만에 달성한 쾌거였다.

박세리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11언더파로 최저타수 우승기록을 세웠고, 만 20세 7개월 20일의 나이로 1위를 차지해 1997년 타이거 우즈가 US 마스터스에서 세웠던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기록(20세 8개월 23일)을 1개월 3일이나 앞당겼다.

박세리의 연이은 쾌거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한파에 힘들어하던 국민에게 기쁨을 주고 환호하게 했다.

박세리(43) 도쿄올림픽 여자 골프 대표팀 감독은 최근 골프 전문 케이블-위성 채널인 SBS골프 '레전드 토크 박세리와 함께' 프로그램에서 당시를 돌아보며 "드롭하고 페널티를 받고 칠 것이냐, 물에 들어가서 칠 것이냐 고민을 했다"며 "지금 얘기지만 무모한 도전이었고, 하지만 그때는 진짜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세리의 맨발 투혼은 최근 미국골프협회(USGA)가 진행한 US여자오픈 역대 명장면 팬 투표에서 2위로 선정됐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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