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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최루탄 맞아 숨진 노동자 유족에 법원 "국가배상 불가"

송고시간2020-05-2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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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소멸시효 지나…재심 확정부터 따지는 긴급조치 등 사건과 달라"

故 이석규씨 유족 소송 패소…노무현 전 대통령 구속에 이른 사건

1987년 고(故) 이석규씨의 운구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7년 고(故) 이석규씨의 운구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故) 이석규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긴급조치 위반 등 국가배상이 받아들여진 다른 과거사 사건들과 달리 따로 재심 절차가 없었으므로 청구권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김병철 부장판사)는 이씨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씨는 1987년 6월 항쟁에 이어 여름에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 당시 대우조선 노조의 파업에 참여했다.

8월 22일 거제도에서 대우조선 노사 간의 마지막 협상이 결렬되자 노조원들이 평화 행진을 벌이던 중 이를 포위한 경찰이 최루탄을 퍼부었다.

이때 이씨는 경찰이 쏜 최루탄을 직격으로 가슴에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이 사건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사인규명 활동에 나섰다가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됐다.

2003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이씨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유족들은 지난해 "경찰 공무원들의 과잉 진압 과정에서 이씨가 사망했으므로 국가가 이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씨가 경찰 등에 의해 자행된 기본권 침해행위에 의해 희생된 사실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가 사망한 1987년 8월 22일에는 유족들이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을 것이므로, 그로부터 3년이 넘어 소송을 제기해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행사하지 않는 기간이 일정 정도 지나면 권리가 사라진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이씨의 경우 당시 명백한 불법에 희생됐다는 사실을 유족이 모를 리 없던 만큼, 손해배상을 요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는데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행사해야 하며, 기간이 경과하면 시효로 소멸한다.

법원은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보다 앞서 발생한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 사건 피해자 등에게도 최근까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왔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 등에 대해서는 일반 사건에서처럼 민법상 소멸시효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이씨의 유족 측도 이런 사례를 들어 소멸시효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긴급조치 사건 등은 모두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 판결이 확정된 사안"이라며 이씨의 경우와 다르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사건 등은 과거 유죄판결이 고문 등으로 조작된 증거에 의해 잘못 내려졌다는 사실이 재심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유족들이 공무원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국가 배상을 청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씨의 사건과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또 헌재의 위헌결정 전까지 이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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