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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1천500년전 '금동신발' 주인은 "왕족 내지 귀족일 듯"(종합)

송고시간2020-05-2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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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분서 43년 만에 금동신발 다시 출토…허리띠 은판, 말갖춤 장식 등도 쏟아져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과 장신구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과 장신구

(경주=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경북 경주 대릉원 일원 내 황남동 120-2호분에서 금동 신발 한 쌍이 출토됐다.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 신발이 출토된 것은 43년 만이다. 사진은 120-2호분에서 흙 속에 묻힌 상태로 발견된 금동 신발과 금동 장신구(달개). 2020.5.27

(경주=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시대 금동 신발 한 쌍이 43년 만에 다시 출토됐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신라 왕경(王京, 수도)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금동 신발은 경주 대릉원 일원(사적 제512호) 내 황남동 120호분의 남쪽에 위치한 120-2호분에 묻힌 사람(피장자)의 발치에서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출토됐다.

현재 발굴 초기 단계로 흙 속에서 측면 일부가 노출돼 신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군데군데 푸른빛이 감도는 신발 표면에는 'T' 자 모양 무늬들이 뚫려 있고, 발등 부위에는 작은 동전 크기의 둥글납작한 금동 장신구(달개)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 금동 신발이 출토된 것은 이번이 13번째로, 1977년 경주 인왕동 고분군 조사 이후 43년 만이다. 지금까지 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은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죽은 이를 장사 지내 보내는 의례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말갖춤 장식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말갖춤 장식

(서울=연합뉴스)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신라 왕경(王京, 수도)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말갖춤 장식. 2020.5.27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무덤 주인의 무릎 부분에서는 허리띠 장식용 은판(銀板)이, 머리 부분에서는 여러 점의 금동 달개가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도 확인됐다.

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이날 황남동 120호분 주변 정밀발굴조사 현장 브리핑에서 "무덤 주인이 착용한 물건은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해 주는데 금동 신발, 은으로 만든 허리띠가 노출된 것으로 봐서 최고 상위 계급, 즉 왕족 내지 귀족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장품이 아직 충분히 출토되지 않아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보통 금동 신발이 출토되면 금관, 은으로 만든 허리띠,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이 함께 나온다"며 "이번에 무덤 주인의 머리 부분에서 금동 장신구(달개) 일부가 확인됐는데 이것이 금동관이나 관 꾸미개(冠飾·관식)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무덤 주인 머리 쪽 별도 공간에서는 금동 말안장과 말을 장식하는 장신구인 금동 말띠꾸미개(雲珠·운주)를 비롯해 말을 부리는 데 사용하는 각종 말갖춤(馬具·마구) 장식, 청동 다리미, 쇠솥, 다양한 토기류 등이 출토됐다.

황남동 120-2호분은 중형분인 120호분 남쪽에 있는 소형분이다. 120호 북쪽에는 또 다른 소형분인 120-1호분이 자리한다. 이곳에선 쇠솥과 유리구슬, 토기류가 출토됐다.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청동다리미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청동다리미

(서울=연합뉴스)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신라 왕경(王京, 수도)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황남동 120-2호분의 청동다리미. 2020.5.27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 따르면 120호분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돼 번호가 부여됐으며, 이후 봉분 위에 가옥 3채가 들어서며 훼손돼 최근까지 고분의 존재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에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2018년 5월부터 120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했으며, 지난해 조사에서 120-1·2호분을 추가로 확인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길이 12m 중형분인 120호분을 (시기적으로) 후대 소형분인 120-1호분(길이 5.9m)과 120-2호분(6.5m)이 파고든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렇게 가운데 봉분을 파고들며 무덤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혈연이나 친족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현장을 보면 120-1호분은 120호분 중앙 가까이 파고들었고, 120-2호분은 가장자리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하늘에서 본 황남동 120호분 일원
하늘에서 본 황남동 120호분 일원

(경주=연합뉴스) 중앙에 있는 120호분 오른쪽에 120-1호분이 가까이 있고, 왼쪽에는 금동 신발 등이 출토된 120-2호분이 약간 떨어져 자리하고 있다. 2020.5.27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봉분이 양호하게 남은 채 발견된 120호분은 마사토를 사용해 북서-남동 26.1m, 북동-남서 23.6m 규모로 봉분을 축조했는데,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가운데 마사토로 봉분을 축조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사토는 화강암이 풍화돼 생성된 모래와 같은 흙으로 쉽게 흘러내려 봉분을 쌓는 데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발굴조사단은 앞으로 120-1‧2호분 조사를 완료한 후 내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120호분도 본격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소형분인 120-2호분에서 이렇게 중요한 유물이 다량으로 나온 것을 볼 때 중형분인 120호분에서는 더 중요한 유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밝혔다.

황남동 120호분
황남동 120호분

(경주=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경북 경주 대릉원 일원 내에 있는 황남동 120호분. 2020.5.27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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