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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메콰르텟 "꿈꿔왔던 소리, 동료들과 함께 만들죠"

송고시간2020-05-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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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9일 롯데콘서트홀서 국내 데뷔 리사이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모든 일은 학교 수업에서 시작됐다. 제1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와 첼리스트 허예은이 독일 퀼른에서 공부하던 시절, 프로젝트 현악사중주를 구성하는 과제가 있었다. 배원희는 음대에서 눈여겨보던 허예은에게 콰르텟(사중주단)을 하자고 제안했고, 허예은은 친구 김지원(비올라)을 끌어들였다. 과제가 끝난 후,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다. 배원희는 프랑스에 사는 지인 하유나(제2바이올린)를 데리고 왔다.

2016년 10월 1일. 제1바이올린 배원희, 제2바이올린 하유나, 비올라 김지원, 첼로 허예은, 이렇게 4명이 현악사중주단을 만들었다. 팀명은 '에스메 콰르텟'. 에스메는 프랑스 고어로 '사랑받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에스메 콰르텟(왼쪽부터 배원희, 허예은, 김지원, 하유나)
에스메 콰르텟(왼쪽부터 배원희, 허예은, 김지원, 하유나)

[크레디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름을 잘 지어야 성공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 속설에 비춰보면 에스메라는 작명은 현재까지 괜찮은 팀명인 듯하다. 그룹명에 담긴 뜻대로, 세계 음악인들에게서 사랑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들은 2018년 세계 최고 권위 현악사중주 콩쿠르인 런던 위그모어홀 국제 콩쿠르에서 '깜짝 우승'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1979년 타가치 콰르텟이 첫 우승을 차지한 후에 하겐 콰르텟(1982), 카잘스 콰르텟(2000), 아르카디아 콰르텟(2012) 등이 트로피를 안았는데,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성 멤버로만 이뤄진 현악사중주단으로도 첫 우승이었다.

"역사적인 위그모어홀에서 이틀간 연주한 것만도 행복한데, 일등 이름이 거명됐을 때는 정말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날 밤부터 여러 에이전트에서 연락이 왔어요. 한 달은 꿈속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한 달쯤 지나고 나니 정말 '왕관의 무게'가 느껴졌어요."(배원희)

에스메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

[크레디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위그모어홀 우승 이후 에스메는 루체른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영국 전역 투어를 진행했다. 하이델베르크 스프링 페스티벌, 모차르트 페스티벌 등 수많은 유럽 축제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영국 투어를 할 때는 김지원과 허예은이 교대로 운전했다. 영국은 운전대가 오른쪽 좌석에 있어서 헷갈렸지만, 오랜 기간 연주 여행을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이동 중에는 핑클, BTS 등 K팝을 듣곤 했다고 한다.

결성 초반부터 팀명처럼 '사랑받고' 있지만, 이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 이들은 하루 4시간가량은 늘 함께 연습한다. 물론 처음부터 잘 맞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만나자마자 잘 맞고 그런 건 세상에 없는 것 같아요. 노력도 없이 좋아지는 건 없죠. 저희가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는 건 한 번 자리에 앉으면 무언가를 이루려는 투지력이 모두에게 있다는 점 일 거예요."(허예은)

에스메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

[크레디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들은 다음 달 9일 롯데 콘서트홀에서 국내 데뷔 콘서트를 연다.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14번,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진은숙 현악사중주 '파라메타스트링' 등을 연주한다.

이 가운데 진은숙의 곡은 지난 3월 프랑스 음반사 '알파 클래식스'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인터내셔널 데뷔 음반에 수록됐다. '파라메타스트링'을 녹음한 건 에스메가 처음이다.

"현악기 테크닉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곡이에요. 진 선생님께 직접 연락을 드려 조언도 받았습니다. 음반 작업할 때도 음원 체크를 꼼꼼히 해주셨죠."(배원희)

"처음에는 굉장히 긴장했는데, 따뜻하게 말씀해주셨어요. 함께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선생님이 잘하고 있다는 격려도 해주셨어요."(허예은)

오는 8월 23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현악사중주 곡의 최고봉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의 후기 작품을 선보인다. 13번 '대푸가'와 15번 등을 연주한다.

"베토벤 말기작이라고 해서 꼭 연주자의 나이가 지긋할 필요는 없죠. 순수하고, 열정이 담긴, 프레시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에스메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

[크레디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들의 음악적 목표는 오랫동안 연주하며 '에스메'만의 색깔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 "한 편의 영화처럼 에스메만의 이야기가 있는 연주"(배원희), "누군가의 기억 속에 깊이 남는 음악"(하유나)과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고전주의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다. 현악사중주의 세계는 넓고도 깊기 때문이다.

"콰르텟이 유지되기 힘들다는 얘기가 있어요. 콰르텟 레퍼토리가 많은데 진짜 다 연주해보고 싶고,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솔로를 공부할 때보다 콰르텟을 공부하면서 음악적으로 성숙해진 것 같아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요."(김지원)

사실 현악사중주는 음악계의 비주류라는 클래식 중에서도 비주류다. 일단 음악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연주에 깊이를 담아내기 쉽지 않아서다. 영화 '마지막 사중주'(2012)의 대사를 빌리면, 현악사중주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영화 '마지막 4중주'에선 현악사중주의 어려움을 이렇게 묘사한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 쉬지 못하는 베토벤 14번처럼, 현악사중주를 하다 보면 쉼 없이 연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포즈도, 튜닝도 못 한다. 쉬지 않고 연주한다는 건, 각 악기가 음률이 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된다는 거다. 그럴 경우 연주를 멈출까? 불협화음이 발생하더라도 필사적으로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

앞으로 에스메에게도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멤버들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랫동안 에스메만의 사운드를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상상했던 소리가 있어요. 그걸 제가 아닌 동료들이 구현해 줘요. 혼자서는 연주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제가 꿈꿔왔던 소리, 그 소리를 동료들의 힘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만큼 멋진 일이 있을까요?"(허예은)

에스메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

[크레디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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