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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비동의 간음죄' 법안이 남성만 차별?

송고시간2020-06-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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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협박 없어도 성범죄 성립…남성피해자 보호 효과 기대

20대 국회선 미래통합당 의원들 적극성…'좌파 법안' 주장 근거없어

독일·영국·미국서 도입…스웨덴은 '과실 강간죄'도 입법

비동의 간음죄 (CG)
비동의 간음죄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막 임기가 시작된 21대 국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심상정 대표 등 정의당 의원단은 지난달 31일 국회 개원 기자회견에서 "불평등·양극화 심화 저지, 사회 공공성 강화, 차별 및 젠더 폭력 근절 등 3대 핵심과제를 추진하겠다"며 "비동의 간음죄 법안을 가장 먼저 입법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비동의 간음죄는 말 그대로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성관계를 한 사람을 성범죄자로 인정해 형사처벌하는 법안이다. 폭행과 협박을 동원해 상대를 강제로 간음한 경우에 처벌하는 현행 강간죄 규정이 피해자 보호에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 논의가 본격화했다.

강압에 의한 간음이 아니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판단되면 성범죄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동의를 했더라도 나중에 여성이 생각을 바꿔 동의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면 남성의 인생은 끝장이 난다.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법안"이라거나 "좌파정부와 페미니스트들이 합심했다"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동의를 확인하는 명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지는 성관계가 적지 않은 현실 속에서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되면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고한 남성을 성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비동의 간음죄는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할까? 대부분의 성범죄 피해자가 여성인 현실에서 성범죄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비동의 간음죄는 일견 남성에게 불리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동의 간음죄가 성범죄 보호망의 바깥에 있었던 남성 피해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현행 강간죄는 '폭행과 협박으로 저항이 불가능한 경우'를 범죄 구성 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남성이 피해자인 성범죄는 성립되기 어렵지만, 비동의 간음죄는 피해자의 동의여부만을 따지기 때문에 남성이 피해자인 성범죄도 쉽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비동의 간음죄를 남녀의 유불리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며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선 비동의 간음죄를 기본 유형으로 두고 폭행·협박에 의한 강간을 가중처벌하는 식의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8년 8월24일 '비동의 간음죄 도입 국회 토론회'에서 인사말하는 나경원 전 의원
2018년 8월24일 '비동의 간음죄 도입 국회 토론회'에서 인사말하는 나경원 전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비동의 간음죄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좌파성향 정치세력이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좌파 법안'이라는 지적도 편견에 가깝다.

오히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백혜련·강창일(이상 더불어민주당)·이정미(정의당) 등과 같은 범진보계 정당 소속 의원(당시 기준)들 뿐 아니라 보수 정당 소속 의원들도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나선 바 있다.

미래통합당의 나경원·홍철호·송희경 전 의원이 각각 비동의 간음죄 법안 3건을 대표로 발의했고, 22명의 같은 당 의원들이 이에 동참한 바 있다. 특히 나 전 의원은 2018년 8월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입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 법무부 장관 경력의 무소속 천정배 전 의원도 20대 국회에서 입법을 추진한 바 있다.

아울러 세계 여러 국가에서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해 성범죄에 강력대처하고 있다.

영국은 2003년 성범죄법을 개정해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았고, 그것을 알면서 간음한 사람을 강간죄로 처벌하도록 했다. 다만 상대방의 동의를 확인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면 제반 사정을 고려해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2016년 11월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한 독일은 형법 177조에 따라 '타인의 인식 가능한 의사'에 반해 간음을 한 사람을 강간죄로 처벌한다. '인식이 가능한 의사'에 반한 경우만 처벌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의사표현 없이 마음속으로만 성관계를 동의하지 않은 경우에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

미국은 주마다 관련 법 내용이 다른데, 워싱턴주는 피해자 동의가 없었다는 점이 입증되면 강간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텍사스주는 피해자가 확정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때에 강간죄가 성립하도록 한다. 반면 캘리포니아주 등은 부동의 간음죄를 도입하지 않았다.

2018년 5월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한 스웨덴 사례는 특히 주목해야 한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간음한 경우는 물론이고 동의 유무를 확인할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도 '과실 강간죄'로 처벌하도록 해 성범죄 피해자를 가장 두텁게 보호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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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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