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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공표죄 기소 이뤄질까…울산지검, 입건 경찰관 소환조사

송고시간2020-06-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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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수사 결과 발표한 경찰관 2명 입건…경찰 "피해 예방 목적" 반발

검찰수사심의위 '계속 수사' 결론에도 1년간 지지부진…사상 첫 기소 여부 촉각

울산지방검찰청
울산지방검찰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경찰의 피의사실공표 혐의를 수사 중인 울산지검이 1년여 만에 경찰관 2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들 경찰관을 재판에 넘긴다면 피의사실공표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사상 첫 사례인 데다, 검경 갈등도 불가피할 전망이어서 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11일 울산지역 법조계와 경찰 안팎에 따르면 울산지검은 최근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복수 관계자가 이런 내용을 확인했는데, 울산지검은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피의자 소환 여부 등 내용 일체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피의사실공표죄를 물어 경찰을 수사하는 이 사건은 지난해 촉발됐다.

지난해 1월 울산지방경찰청이 약사 면허증을 위조해 약사 행세를 한 여성을 구속한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데 울산지검은 이 여성이 공인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경찰이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며, 수사 계장급 1명과 팀장급 1명을 입건해 수사를 진행했다.

당시 경찰은 "국민이 알아야 추가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내용인데 이를 두고 검찰이 피의사실공표를 운운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입건된 경찰관들도 일정 등을 이유로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특히 울산지검과 울산경찰청은 이 사건 전에도 고래고기 환부 사건과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사건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터여서, 피의사실공표 사건을 놓고 더욱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에 울산지검은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인지를 심의해 달라며 대검찰청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고,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주요 사건 수사 과정을 심의하는 대검 산하 검찰수사심의위는 지난해 7월 '경찰관 피의사실공표 사건에 대해 수사를 계속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결정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검찰 수사는, 그러나 이후로도 약 1년 동안이나 지지부진했다.

이를 두고 검경 갈등 표출에 대한 부담과 함께 피의사실공표 엄격 적용을 강조했던 울산지검 간부급 검사들의 인사이동,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를 제한하는 공보준칙 개정 움직임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울산지검은 수사 실무에서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을 엄격히 적용하고자 관련 내용을 연구한 결과물을 책자로 발간했다. 울산지검이 발행한 책 '피의사실공표죄 연구' 표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7월 울산지검은 수사 실무에서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을 엄격히 적용하고자 관련 내용을 연구한 결과물을 책자로 발간했다. 울산지검이 발행한 책 '피의사실공표죄 연구' 표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데 이번에 검찰 수사 진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피의자 조사가 이뤄지면서, 조만간 수사가 마무리될지 관심이 쏠린다.

만약 검찰이 피의사실공표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경찰관들을 기소한다면, 사실상 사문화된 법 조항을 적용하는 첫 사례가 된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공표)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할 때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를 범죄로 규정한 것은 '여론 재판'을 방지하고 인권을 보호하며 재판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만 있을 뿐, 검사가 기소한 사례가 전혀 없을 정도로 법조문이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지난해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8∼2019년 피의사실공표 사건이 347건 접수됐으나, 기소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이런 점을 악용해 수사기관은 피의사실을 고의로 흘려 피의자를 압박하고, 반대로 언론 보도가 부담스러울 때는 피의사실공표를 이유로 취재를 회피하는 등 법 조항을 고무줄처럼 활용하기도 했다.

다만 검찰이 경찰관들을 기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 스스로 피의사실공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는 데다, 피의자 인격과 명예 등 기본권 보호와 함께 '국민의 알 권리' 역시 보장돼야 할 헌법적 가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정당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수사 과정과 결과를 국민에게 알릴 책무가 있으며, 미국·영국·독일 등 많은 국가가 피의사실공표죄를 입법화하지 않은 배경에도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등이 고려됐다는 것이다.

울산 법조계 한 관계자는 "찬반이 첨예하게 맞서는 문제인 만큼 울산지검의 피의사실공표 수사는 그 상징성이 크고, 그 결과에 따라서는 검경 갈등이 격화하는 등 여파가 상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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