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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제보] 비정규직 옮겨다니며 10년째 장학금 기부한 청년…무슨 사연?

송고시간2020-06-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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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홍씨 "나부터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 주면 세상 바꿀 수 있어"

불행했던 어린 시절 생각나 기부…지원받은 고교 교사들도 장학금 조성 움직임

[※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서울 서대문구 B고교에서 근무하는 C교사의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건주 인턴기자 = "세상을 바꾸는 건 어려워 보이지만 나를 바꾸는 건 쉬워요.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그 누군가가 또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에요. 그렇게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저는 믿어요."

인천시 부평구에 사는 최성홍(36)씨는 오랫동안 비정규직 일자리를 옮겨다니면서도 10년간 꾸준히 중·고등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으로 기부를 이어오고 있을까. 지난 17일 부평구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마스크를 잠시 벗은 채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 응한 최성홍씨
마스크를 잠시 벗은 채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 응한 최성홍씨

[촬영 이건주. 재판매 및 DB금지]

◇ 불우한 어린 시절…20대 중반에 중·고교 검정고시 통과

최씨는 지금은 밝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어려서부터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부산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어머니와 불화, 학교 내 괴롭힘 등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14살에 자퇴했다.

22살 때 유일한 동거인인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월세 낼 돈이 없어 외할머니 집, 절 등을 전전하던 때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살길이 막막해져 서울에서 일하는 누나를 따라 무작정 상경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처음 배우는 내용이라 어려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해 25살에 중학교 검정고시를, 1년 뒤에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그는 학원에 들어가 대학수학능력시험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인 그를 써주는 일자리도 드물었다. 결국 공사장 일용직 자리 등을 전전하다 27살에야 서울 동대문구 A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월급을 받으니 뿌듯하기도 하고 막연히 좋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한 학기 일하고 수중에 모인 300여만원 중 100만원을 A고교에 기부했다.

장학금을 전달받은 학생을 만난 날 그의 인생관이 바뀌었다.

"학생을 만나기 전 교장 선생님께 학생 사정을 들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저만큼 불행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만큼이나 많이 울었다.

최씨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했어요. 그날 저는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어요. 제가 살면서 가졌던 그 어떤 마음보다 순수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 2011년부터 꾸준히 기부… 10년간 14명 학생 도와

그때부터 정기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에 100만원씩, 10년간 연평균 2번 정도 꾸준히 장학금을 기부했다. 지금까지 도운 학생만 14명이다.

최씨는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보면 제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나요. 제가 돕는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자신의 인생보다 지금까지 도와준 학생들의 앞날이 잘 되기를 멀리서나마 간절히 기도해요"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수입으로 장학금을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월수입이 100만원이 채 안 되는 날도 많았어요. 돈이 없어 사촌 결혼식을 못 가는 일도 있었죠.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는데 치료비 낼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할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올 초에는 다니던 핸드백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해 정리해고를 당했다. 지금 일하는 무김치 공장에서도 부당해고를 당했다가 간신히 복직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부를 이어온 것은 도움을 받는 학생들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학금을 받은 한 학생이 저에게 고맙다며 선물과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편지에서 저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줬어요. 제가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거쳤으면 선생님을 하고 싶었을 것 같았는데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서대문구 B고교에 장학금을 기부하는 최씨는 지난 12일 100만원을 전달했다.

B고교에 장학금을 기부하는 최성홍씨
B고교에 장학금을 기부하는 최성홍씨

2020. 6. 12.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최씨는 향후 소망을 묻는 말에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돼 더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B고교 관계자는 "올 초에 장학금을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코로나19 시국이고 형편도 넉넉지 않아 보여 받지 않겠다고 하니 '그러면 장학금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은 어떻게 하냐'며 오히려 학생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선한 마음으로 장학금을 기부해주시는 이분에게 자극을 받아 교사들 사이에서 제자를 위해 장학금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gunniest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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