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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강진 대피 중 챙겨든 마스크…일상 깊숙이 들어온 코로나

송고시간2020-06-2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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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일로 멕시코, 돌발상황에도 마스크 착용후 대피한 사람 많아

마스크 쓴 채 대피한 멕시코시티 시민들
마스크 쓴 채 대피한 멕시코시티 시민들

[촬영 고미혜]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20층 아파트 창문 밖으로 건물 외벽 청소를 위해 내려진 로프가 출렁출렁 흔들렸다.

멕시코에선 드물지 않은 작은 지진으로 여기고 '하필이면 외벽 청소하는 날 지진이라니, 저 아저씨 괜찮을까' 잠시 생각했는데, 곧 타인의 안위를 걱정할 상황이 아님을 직감했다.

꽤 큰 진동이 이어졌고, 잘 생각나지 않는 지진 대피 요령을 떠올리며 우왕좌왕하다가 일단 집 밖으로 대피하기로 했다.

휴대전화 하나 들고 나가려다 현관 앞에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귀중품은 물론 기자의 분신과도 같은 노트북도 못 챙겼는데 마스크는 챙긴 것이다.

다른 주민들도 사고의 흐름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밖에는 이미 인근 건물 주민들이 잔뜩 나와 있었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였다. 급하게 몸만 나온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절반쯤은 마스크를 썼다.

이날 멕시코시티를 뒤흔든 지진은 700㎞가량 떨어진 남부 오악사카주에서 발생한 규모 7.4의 지진이었다. 꽤 위력적인 진동이었고 시민들은 당황했지만 이제 외출 '필수품'이 된 마스크를 잊지 않았던 셈이다.

건물 밖으로 대피한 멕시코시티 시민들
건물 밖으로 대피한 멕시코시티 시민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멕시코시티 시민 베레니세 에르난데스는 "이번 지진은 갑자기 강하게 뒤흔들렸던 2017년 강진 때와는 달리 경보 이후 대피 시간이 충분한 편이었다"며 "대피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몰릴 것 같아 마스크를 쓰고 긴소매 옷을 입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기자가 사는 아파트엔 큰 파손이 없었고, 건물 점검 후 1시간여 만에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파트 관리 직원들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릴 것을 우려해 10명씩 끊어 입장시키고, 일일이 손 소독제를 건넸다.

전 세계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멕시코 일상의 일부가 됐다.

멕시코에 코로나19가 상륙한 지는 4개월쯤 됐다.

아시아나 유럽보다 뒤늦게 확산이 시작됐으나 아직 감염 곡선의 '정점'은 찾아오지 않았다.

누적 확진자는 18만 명, 사망자는 2만2천 명이 넘는다. 여전히 하루 수천 명의 감염자와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

장기화한 보건 위기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아직 멕시코 연방정부 보건부는 공식적으로 일상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있지 않지만, 일반 시민 사이에서 마스크 착용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강진에 병원 밖으로 대피한 멕시코시티 의료진과 환자들
강진에 병원 밖으로 대피한 멕시코시티 의료진과 환자들

(멕시코시티 AF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주 연안에서 강진이 발생한 이후 진동에 놀란 수도 멕시코시티의 한 병원 의료진과 환자들이 밖으로 대피해 있다. leekm@yna.co.kr

채 한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주변에 감염자나 사망자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경각심이 높아졌다.

정 많은 멕시코인들은 만나면 포옹과 볼 키스를 주고받는데, 코로나19 초기 습관을 못 버리고 다가가려다 멈칫하던 사람들도 이젠 자연스럽게 거리를 유지한 채 인사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 영화관이나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들이 꽤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집에 머물라"는 권고가 이어지고 있는 멕시코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집 밖으로 나온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강진이라는 돌발 상황 속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가능한 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피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19가 일상에 얼마나 깊이 침투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불안한 진동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대부분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은 규정에 따라 대피하지 않고 병원에 남아 있었다고 했다. 지진 강도가 조금 더 셌더라면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지구촌 어느 곳이든, 최소한 코로나19 팬데믹이 사그라들기 전까진 감당 못 할 자연재해가 동시에 닥치는 비극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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