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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톡톡] 우리 마을에 영웅이 산다

송고시간2020-06-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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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70년, 그날의 기억을 품고 사는 사람들 -

우리 마을에 영웅이 산다
우리 마을에 영웅이 산다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950년 6월, 수없이 많은 젊은이가 전쟁터로 불려 나갔다. 공산주의 폭력에 맞선 의로운 싸움이었지만, 한 민족 형제들의 심장에 총과 칼을 들이대야 했던 비극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이 끔찍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겐 '영웅'이란 칭호가 붙었다. 손에 쥐어진 반짝이는 훈장만이 비극의 중심에 섰던 참전용사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주었다.

세월이 흘러 70년이 지났다. 그날의 피가 스며든 이 땅엔 그럴듯한 평화가 찾아왔고, 오랜 분단은 이제 익숙해졌다. 시대 변화에 걸맞게 대립보다는 평화를 지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와 이웃을 지키겠다며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까지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6·25전쟁 70년, 변해버린 사회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전쟁 영웅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① 아흔이 넘어도 '주5일 출근'

함경남도 흥남에 살던 문성주(91) 씨는 전쟁 발발 직전 동원령에 의해 북한군에 강제 소집됐다가 도망쳤다. 국군이 이 지역을 점령한 시기에 월남했고, 곧바로 국군에 입대해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후 군 생활을 이어가다 1975년 상사로 전역했다.

2015년부터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서울지부 중구지회장을 맡아 문씨와 같은 국가유공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보훈회관으로 출근해 일한다. 부인과는 10여년 전 사별한 뒤 현재 서울 중구 신당동 임대아파트에 홀로 거주 중이다.

아흔이 넘어도 '주5일 출근'
아흔이 넘어도 '주5일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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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전쟁 영웅'에서 아내의 영웅으로

1950년 충남 서산에서 또래들과 함께 북한 인민군에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김종진(92) 씨는 고향으로 돌아와 민주주의 편에 서서 학생 운동을 벌이다 국군에 자원입대했다. 휴전 직전인 1953년 백마고지 전투에서 수류탄 파편에 크게 다치고 한쪽 눈마저 잃었다. 전쟁이 끝나고 1956년 대위로 전역해 농사를 짓기도 하고, 사업도 하다가 예비군 교육 활동을 해왔다.

지금은 충남 당진에서 중풍으로 몸이 마비된 아내 한춘자 씨를 17년째 돌보고 있다. 김씨가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는 끝까지 아내의 곁을 지키는 일이다. 아내가 이따금 외출하는 유일한 공간인 집 앞 화단과 텃밭은 아들 경수 씨와 함께 가꾸고 있다. '전쟁 영웅'은 아내의 영웅이 되어 산다.

'전쟁 영웅'에서 아내의 영웅으로
'전쟁 영웅'에서 아내의 영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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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마음만은 여전히 '귀신 잡는 해병'

이율(90) 씨는 1950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공산당의 조만식 피살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명수배가 내려지자 배를 타고 남으로 내려왔고, 곧바로 해군에 입대해 6.25에 참전했다. 휴전과 동시에 해병대 교관 임무를 맡았던 이씨는 자신을 '귀신 잡는 해병을 키워낸 장본인'이라 칭하며 자부심을 내보였다.

충북 제천에 사는 이씨의 집 거실 벽엔 훈장과 표창장, 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사진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아흔이 넘은 나이 탓에 지팡이 없이는 불편한 몸이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귀신 잡는 해병'이다.

마음만은 여전히 '귀신 잡는 해병'
마음만은 여전히 '귀신 잡는 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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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또 한명의 '전쟁 영웅'

국군 13만7천여명이 전장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실종되거나 포로로 잡혀간 이들까지 합하면 17만 목숨이 이 끔찍한 전쟁으로 증발했다. 거의 다 젊은 남성들이었다. 그런데 전쟁 후유증은 참전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6·25는 수없이 많은 여성을 '전쟁미망인'이라는 잔인한 이름으로 살게 했다.

양봉덕(91) 씨는 인생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고 70년을 살았다. 한 달 된 갓 난 아들을 남겨둔 채 전쟁터로 떠난 남편 신원호 씨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 가난을 이겨내는 일, 그리고 홀로 남겨진 이를 향한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일조차 모두 양씨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70년, 흐른 세월만큼 식구들이 늘었다. 양씨부터 네 살배기 증손녀까지 4대가 함께 서울에 산다. 하지만 양씨를 뺀 가족 누구도 이 전쟁 영웅을 알지 못한다. 겨우 복원해낸 영정사진과 금빛 무공훈장만이 영웅이 곁에 살았음을 말해줄 뿐이다. 가족들에게는 홀로 70년을 묵묵히 견뎌낸 양씨가 바로 진정한 영웅이다.

또 한명의 '전쟁 영웅'
또 한명의 '전쟁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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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우리 곁엔 아직 영웅들이 살고 있다. 2020.6.25

※취재협조: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참고문헌: 박동찬, 「통계로 본 6.25 전쟁」, 군사편찬연구소, 2014, 30p.

ha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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