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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격전'의 원조는 몽골군"

송고시간2020-06-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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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 분석한 '칭기스의 교환'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하인츠 구데리안, 달라이 라마,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웨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미국의 몽골사 전문가 티모시 메이가 '칭기스의 교환'(원제 The Mongol Conquests in World History·사계절) 서문에서 던진 질문이다. 정답은 '모두 몽골제국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1931~2018)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하면서 신대륙과 구대륙의 동물, 식물, 사상, 문화, 기술, 병원균 등이 상호 전파돼 급격한 사회변화를 초래한 것을 '콜럼버스 교환(Columbian Exchange)'이라고 불렀다. 저자는 몽골의 정복 역시 수많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전환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용어가 충분히 타당하다고 본다. 1, 2부로 구성된 원서에서는 2부의 제목이었으나 한글판에서는 책 제목으로 '격상'됐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의 칭기즈칸 동상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의 칭기즈칸 동상

[EPA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칭기스칸(표준국어대사전 표기로는 '칭기즈칸')과 그 후예들이 정복을 통해 이룩한 제국의 광대함만큼이나 이를 바라보는 관점 간 간극도 넓다. 레닌이 칭기스 가문과 대립하다 1636년 볼가강으로 이주한 오이라트 몽골족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점을 들어 "몽골제국이 볼셰비키 혁명에 기여했다"고 하는 식의 '몽골 마니아적' 주장이 있다. 또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 특히 러시아에서는 잘못된 모든 것을 몽골의 유산으로 돌리는 경향도 보인다.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과학자들조차 "러시아의 알콜 중독은 몽골족 탓"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이러한 궤변이나 확대해석을 경계하지만, 세계사에 끼친 몽골의 영향이 부인할 수 없이 막대한 것이었다는 점은 분명히하려고 한다. 그 영향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칭기스의 교환'이다. 서문에서 저자가 거론한 5명은 직간접적으로 '칭기스의 교환'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다.

콜럼버스는 몽골제국의 붕괴로 교역로의 안전이 위태로워지고 상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대담한 유럽인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이미 130년 전 몽골제국이 멸망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대칸'을 찾으려 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독일군 명장 구데리안이 창시한 '전격전'은 몽골군의 전략을 연구한 결과라는 점에서, 신앙심과 지혜를 상징하는 '달라이 라마'라는 명칭은 칭기스칸의 후손 알탄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티베트 불교의 한 분파 지도자에게 처음 부여했다는 점에서 '칭기스의 교환'이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궁정에 있는 칭기즈칸
궁정에 있는 칭기즈칸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사계절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이에 비해 셰익스피어와 존 웨인이 '칭기스의 교환'과 만나게 되는 지점은 역사의 본류라기보다는 '곁가지'에 가깝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는 등장인물이 군주에게 충성심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참', 즉 칸의 턱수염 한 가닥을 뽑아 바치는 장면이 나온다. 존 웨인은 1956년 제작된 영화 'The Conqueror(한국 개봉명 '징기스칸)'에서 치켜올린 눈썹에 팔자 수염분장을 하고 칭기스칸을 연기한다. 둘 다 몽골과 칭기스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칭기스의 교환'이 끼친 영향이 광범위한 시대와 지역에 걸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임은 분명하다.

저자는 칭기스칸의 몽골 통일 이후 제국의 형성과 분열에 이르는 과정을 간략히 살펴본 뒤 교역, 전쟁 방식, 행정, 종교, 흑사병, 이주와 인구, 문화 등 7개 측면에서 '칭기스의 교환'의 실태와 의미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몽골의 정복 전쟁과 제국 지배는 잔인하고 광포한 살육, 야만적인 파괴, 인간이 가져온 것이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래서 많은 이가 '신의 징벌'이라고 부른 재앙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중세 유럽사에 대재앙으로 기록된 흑사병은 그중 대표적인 예라고 할만하다.

1346~1347년 크림반도의 도시 카파를 포위 공격하던 몽골군은 흑사병에 걸려 숨진 동료들의 시체를 투석기로 성안에 던져넣었다. 상상치도 못했던 공격에 질린 카파 거주민들은 배를 타고 흑해로 탈출했으나 피난처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죽음의 배'를 받아주는 도시는 없었다. 1347년 12월 31일 카파를 떠난 배 세 척이 제노바에 도착했으나 역병이 배에 퍼져 있음을 확인한 그곳 시민들은 불화살과 탄환을 쏘며 이들을 몰아냈다. 이 선박들은 결국 이듬해 시칠리아의 메시나에 도착했고 이때부터 지중해 동부해안을 시작으로 전 유럽에 흑사병이 확산했다.

흑사병을 침략 수단으로 활용한 몽골 역시 역병의 희생자가 됐다. 몽골제국의 계승 국가들 가운데 원제국은 마지막 흑사병이 창궐한 지 14년 만에 중국을 상실했고 주치칸국도 흑사병으로 국력과 군사력에 타격을 입은 끝에 티무르의 공격을 받아 사실상 멸망하고 말았다.

몽골군의 전쟁 수행 방식은 구데리안 장군의 '전격전'에 영감을 준 것 이외에도 당시는 물론 훨씬 더 먼 미래에까지 전쟁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몽골군의 강점 가운데 하나로 심리전을 들면서 이들에게 악명을 안겨준 대학살도 사실은 계산된 전술이라고 설명한다. 대학살은 몽골의 대오가 지나간 뒤에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게 했고, 몽골 군대의 규모를 실제보다 부풀리는 데도 도움이 됐다. 몽골군은 스파이와 생존자를 이용해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알렸고, 이러한 소문에 겁먹은 다른 지역 사람들은 싸우기보다는 항복하는 쪽을 택했다.

적을 추격하는 몽골족
적을 추격하는 몽골족

사라이 앨범(Saray album) 삽화 [사계절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병력 규모를 속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모닥불을 지펴놓거나, 말들의 꼬리에 나뭇가지를 묶어 먼지를 일으키게 하는 등 속임수는 기본이었다. 적 진영의 반란 혹은 경쟁자들 간 불화를 조장하거나, 억압받는 소수 세력을 지원하며 환심을 사는 것도 선호하는 수법이었다. 이 때문에 몽골군이 '해방자'로 환영받는 사례도 없지 않았다.

'파괴의 화신'처럼 받아들여지는 몽골이지만 종교적 관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역사상 몽골제국만큼 대립하는 종교들을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한 정권은 많지 않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이유가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면 피정복민들의 적개심과 반란의 위험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은 지배하는 지역 내 모든 종교의 성직자에게 세금을 면제해 줬고 복속을 표시해온 도시의 경우 종교 시설만큼은 파괴하지 않았다.

많은 종교 세력이 당시 세계 최대 강국인 몽골제국을 개종시키려 노력했으나 교황까지 나선 기독교는 실패했고 불교와 이슬람교는 제국의 분열 이후에야 계승 국가들에서 일부 개종에 성공했다. 저자는 몽골이 세계종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이유로 그들의 신앙 체계인 '텡게리즘'을 든다. 이 신앙에 따르면 몽골은 하늘로부터 세계를 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기독교의 신, 무슬림의 알라, 하늘 혹은 신성한 영혼 등 다른 모든 개념은 자신들의 신앙 체계로 흡수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특히 유일신 종교는 이들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저자는 이에 더해 암말의 젖을 발효시킨 '쿠미스' 등 알코올을 금지하는 점도 몽골이 이들 종교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결론이나 마무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으나 저자가 서문에 쓴 구절을 결론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역사상 어떠한 사건 또는 제국도 몽골인들만큼 큰 충격을 주지 못했다. 몽골인들은 군사 분야의 혁신, 국제 무역, 세계종교의 확산, 기술과 사상의 전파를 몽골의 정복이라는 하나의 도가니 속에서 이룩해냈다. 먼지가 가라앉은 이후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고, 결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권용철 옮김. 사계절. 444쪽. 2만원.

"독일 '전격전'의 원조는 몽골군" - 4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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