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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영 심판 "눈물의 첫 경기로 시작…자부심으로 18년 버텼죠"

송고시간2020-06-28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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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수 출신으로 WK리그 첫 200경기…"여자축구 활성화 일조하고파"

양선영 심판
양선영 심판

[양선영 심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장보인 기자 =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가끔 중계 방송으로 축구 경기를 보기는 했지만, 그라운드를 밟아본 적도 없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중계방송 속 우연히 눈에 들어온 심판의 모습에 반해 무작정 뛰어든 미지의 세계에서 어느덧 18년을 버텼다.

최근 여자실업축구 WK리그에서 심판 최초로 2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양선영(43) 부심 이야기다.

2009년 1급 심판 승급 이후 줄곧 WK리그 현장을 누빈 양 심판은 이달 22일 보은공설운동장에서 열린 2020시즌 2라운드 보은 상무-경주 한국수력원자력 경기에서 가장 먼저 200경기 금자탑을 세웠다.

그는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200경기인 줄도 몰랐다"며 "모든 동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TV로 유로2000 경기를 보다 관심이 생겨 대한축구협회의 강습을 듣고 자격을 취득, 심판의 길에 들어섰다는 양 심판은 축구계에서는 여전히 드문 '비선수 출신' 심판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27명의 여자 1급 심판 중 한 번도 운동에 몸담은 적이 없었던 이는 양 심판을 포함해 3명 정도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지만, 그의 첫 경기는 더욱 그랬다.

양 심판은 "처음 뛴 경기가 초등부 경기였다. 규칙을 달달 외웠지만, 막상 나가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 잘 못 했다"며 "양 팀 지도자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고, 그날 경기 끝나고 울었다"고 추억했다.

'비선수 출신'으로 겪는 고충도 적지 않았다.

심판에게 쏟아지는 항의와 자신의 실수에 속을 태운 것은 물론 체육계 문화에 적응하는 게 어려워 그만둘 생각도 했다.

양 심판은 "처음 발을 딛는 세계에 적응하려니 쉽지 않았다. 동료들이 내가 이렇게 오래 버틸 줄 몰랐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를 버티게 한 건 "심판을 보면서 얻는 성취감, 경기 후 밀려오는 뿌듯함과 자부심"이었다.

200경기 출전 기념패 받은 양선영 심판
200경기 출전 기념패 받은 양선영 심판

[대한축구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축구계의 '주류'라 할 수는 없는 WK리그에서만 12년. 이 무대에 대한 양 심판에 애착은 각별하다.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본 선수들이 많다"면서 "청소년기부터 봐온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태극마크를 다는 모습을 보면 괜히 뿌듯하고 내 일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K리그에서 활동하는 남편 송봉근 심판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양 심판은 "남편과 비슷한 시기에 심판이 됐고,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조언도 해주고 고민도 함께 나눌 수 있어 힘이 된다"고 귀띔했다.

이제 자타공인 '베테랑'이 된 양 심판은 "WK리그에 뼈를 묻을 생각이다"라고 했다.

"선수도 심판도 온 힘을 다해 뛰고 있는데 생각보다 WK리그 인지도가 낮아 아쉽다. 여자 축구가 남자만큼 빠르진 않아도 똑같이 치열하고 다양한 매력이 있다"면서 "여자 축구가 활성화하도록 그라운드에서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 심판으로도 활동하는 양 심판은 이 기간을 늘리고 싶은 의지도 크다. 연 2회 체력 측정에서 정해진 기준을 통과해야 다음 해에도 심판으로 활동할 수 있어 일주일에 3∼5일 체력 단련을 위해 운동장을 달린다.

그는 "언제까지 심판으로 경기에 나서게 될지 모르지만, 한 경기라도 더 뛰고 싶다"며 "한 게임, 한 게임이 정말 소중하다. 선수들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만큼 함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bo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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