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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기부하면 좋은 에너지 나온다" 충남 아산의 쌀 기부왕

송고시간2020-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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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식씨 쌀 유통업으로 사업 일궈…10년간 쌀 6천여 포대 기증

대 이어 나눔 실천…장남은 장학금 등을, 차남은 군 월급 모아 기부 동참

인터뷰하는 이민식씨
인터뷰하는 이민식씨

[촬영 이은중 기자]

(아산=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기부는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에너지가 나오기 때문에 하는 거지요. 앞으로도 힘닿는 대로 계속해 나갈 겁니다."

3일 충남 아산시청 앞 한 커피숍에서 이민식(60) 씨를 만났다. 운동화에 티셔츠 차림의 수수한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부를 드러내 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쑥스러운 듯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충남 아산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나눔 봉사왕'이다.

그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2006년쯤 국제라이온스클럽에 처음 들어갔다.

온양온천라이온스클럽 회장도 2대에 걸쳐 연임했다.

당시 회장 취임식에서 화환 대신 받은 쌀을 모두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화환 대신 쌀을 받아 기부한 것은 이씨가 온양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이것이 그의 나눔 봉사의 시작이 됐다.

회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아산중학교 학생 8가정에 정기적으로 쌀 10㎏씩을 후원했다.

지역 장애인성폭력상담소, 애육원 등에도 쌀을 후원, 안정적으로 급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다문화가정,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지원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비 3천만원을 들여 청각 장애인 베트남 다문화가정에 사랑의 집을 지어준 것은 보람된 일이었다.

올해만도 1천240포대(5천만원 상당)의 쌀을 기부하는 등 지금까지 이씨가 기부한 쌀은 6천여포대(포대당 10㎏·2억1천여만원)에 이른다.

"왜 쌀만 기부하느냐"는 질문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쌀은 기본이 되는 식량으로, 쌀이 있으면 일단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농고 졸업 후 그는 고향 영인면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1만2천여㎡가 그의 전 재산이었다.

이후 덤프차로 중기사업도 하고, 화물차로 운수사업에도 손을 댔다.

그러다가 한 쌀 유통업이 사업 기반을 쌓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그는 예산에서 '한결미곡처리장'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니까 쌀은 그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쌀 기부하는 이씨 가족
쌀 기부하는 이씨 가족

왼쪽부터 이민식, 이숙희, 아들 원호, 태호 [아산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씨의 나눔 봉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나눔 유전자'는 대를 이어 두 아들에게도 전해졌다.

큰아들 원호(27·대학생)씨가 10년 전 고교 시절 아산고에 봉사클럽인 '레오클럽'을 만들어 초대회장을 맡았다.

클럽 회원들은 한 애육원에 생필품과 성금을 기부하는 나눔 봉사를 했다. 생필품과 성금은 아산목련라이온스클럽 창립행사에서 받은 장학금(180만원)으로 마련했다.

'사랑의 헌혈'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이뿐 아니라 그는 2011년 고교 2학년 때 학업 우수 장학금으로 받은 100만원을 시에 구제역 예방 성금으로 내기도 했다.

둘째 태호(24·대학생)씨는 군에서 모은 월급 전액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모아 전역 후 온양3동에 쌀 100포대와 연탄 1천장을 사서 기탁했다.

부모의 선행을 어려서부터 몸소 배운 것이다.

이씨의 아내 이숙희(52)씨도 남편의 나눔 봉사를 그냥 지켜만 보지 않았다.

남편이 온양온천라이온스클럽 회장으로 있던 2010년 목련라이온스 여성클럽이 만들어졌다. 아내도 그 클럽 내에서 급식, 연탄과 김장 봉사 등을 열심히 했다.

그런 그에게 평탄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30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덤프차를 할부로 사서 중기사업을 하던 때였다.

쫄딱 망했다. 집도 경매 처분됐다. 정직히 일해서 받은 어음이 다 부도가 났다.

잠시 고향을 뜨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고향에서 빚지고 야반도주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했다.

화물차 운송 일을 다시 시작해 2년 만에 빚을 모두 갚았다.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라고 물으니 "나눔은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욕심을 버리니 행복해지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나의 나눔이 타인들에게 옮겨지는 '행복 바이러스'가 되고 싶어 인터뷰에 응한 것"이라며 "남은 소원은 시청 마당에 기부용 쌀 2천포대를 쌓아 놓는 것"이라며 웃었다.

라이온스클럽 여성 회원들
라이온스클럽 여성 회원들

[아산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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