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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고철 천사' 김원호씨 "지금 삶은 '덤', 봉사하다 갈 것"

송고시간2020-07-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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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 폭행에 죽을 고비 넘기고도 "봉사는 포기 못해"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모두가 잠든 새벽 주택가를 돌며 고철을 주워 판 돈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는 '고철 천사'의 이야기가 이웃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고철 천사' 김원호씨
'고철 천사' 김원호씨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매일 새벽 고철을 주워 모았다가 판 돈을 기부하는 제주시 용담동의 김원호씨. 2020.7.12

주인공은 제주시 용담동에 사는 김원호(61)씨. 다리가 불편한 김씨는 매일 새벽 2시면 포대와 집게를 챙겨 길을 나선다. 수집 대상은 알루미늄 캔과 고철. 그는 매일 2시간 주택가를 돌며 1∼3㎏을 주워 모아 고물상에 내다 판다. 알루미늄 캔은 1㎏ 당 700원, 고철은 1㎏ 당 150원을 받는다. 그는 이렇게 하루 1천원에서 많으면 2천원 가량을 손에 쥔다.

김씨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난 3월 50만원, 얼마 전 또다시 62만5천원을 기부했다.

김씨의 봉사활동은 22년 전 시작됐다. 택시 기사였던 그는 1995년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재산 전부를 잃었다. 망연자실했던 김씨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제주시 용담동에 정육점을 차렸고, 어려운 김씨를 도우려는 이웃들은 한 근, 두 근 고기를 팔아주며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 그때 김씨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따뜻함을 느꼈고, 세상에 대한 보답을 결심했다.

가게를 시작한 지 3년째부터 그는 이웃들에게 진 빚을 갚기 시작했다. 매달 양로원에 고기 30㎏을 보내고, 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봉사활동에 직접 나서 노인 취약계층을 위한 집수리, 외출 보조, 도배 등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김씨는 2016년 식당을 차렸고, 이곳에서 독거노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했다. 하지만 식당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게 된 김씨는 이웃을 돕기 위해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게 됐다. 바로 폐지와 고철을 줍는 것이었다.

고철을 줍기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인 2018년 2월 22일 새벽 2시 30분께 김씨는 또 한번 큰 시련에 부딪혔다. 제주시 삼도동 주택가에서 고철을 줍다 '묻지마' 폭행을 당한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뇌손상에 오른쪽 다리 복합골절까지 부상은 심각했다. 며칠 뒤 범인은 잡혔지만, 그는 범인으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고, 국가로부터 장애 등급도 받지 못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김씨는 크게 좌절했다. 우울증에 실어증까지 얻어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극정성 자신을 돌봐준 아들과 딸, 부인을 보며 다시 일어서겠다는 힘든 결심을 했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새벽에 다시 고철을 줍기 시작했다. 폭행 당하기 이전엔 폐지도 주웠지만, 몸이 불편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게 돼 알루미늄 캔을 주로 줍게 됐다.

출가한 자녀들은 불편한 몸으로 매일 새벽 고철을 주우러 나서는 아버지가 걱정돼 처음에는 그의 봉사활동을 극구 말렸다. 하지만 김씨가 고철을 주우면서 어렵지 않게 지팡이에 의지해 걸을 수 있게 되고, 삶의 이유인 봉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되자 자녀들도 반대를 거뒀다.

지금의 삶이 '덤'이라는 김씨는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다 두고 삼베옷 하나 입고 저승으로 가는 것"이라며 "지금도 몸이 불편하지만 더 나빠지기 전까지는 이웃들 도우면서 살아보겠다"고 말했다.

ji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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